<신학>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위한 준비(1)
요즘 중동에서 일어나는 혁명의 불길은 가히 폭발적이다. 총칼로도 그 바람을 잠재울 수 없어 보인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과거 우리가 지나 온 어두움 속에서 민주화의 소망이 불길처럼 일어날 때,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상관없이 자주 인용하던 주님의 말씀이다. 금번 중동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말씀이 옳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지상 사역과 십자가 죽음
그런데 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스스로 자신의 삶에 적용하시고 계신 것을 보게 된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특정한 형태의 폭력적 죽음을 예감하시고 그것을 자신이 지셔야 할 짐이라고 예고하시고 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모든 지상 사역의 최종 고지처럼 이 십자가의 죽음을 그리고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선포 안에 자신의 십자가 고난을 함께 섞어 놓으시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죽음과 별개의 것이 될 수 없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죽음의 순간이 그분의 지상적 사역과 아무 상관이 없는 별개의 다른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고 정당하게 이해하려면 그분의 모든 사역의 연속성 안에서 십자가의 죽음이 갖고 있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거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는 스스로 자신에게서 설정하신 그분의 사역 전체를 통해서 드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사역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이해하시고 선포하셨던, 자신의 지상의 삶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이후의 새로운 부활의 능력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 사역 전반에 대한 이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수 천년동안 서구교회가 형이상학적 논의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과 더불어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새롭게 다시 말할 수 있는 보다 더 적합한 길도 찾아야 한다는 사명도 우리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은 어떤 형이상학적 개념과 그 상호 관계에 대한 추상적 사고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그 사실적 사역에 적합한 범주로서 사유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 이해
성서에 따르면 주님의 사역은 명백하게 성령의 메시야적 권능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주님의 사역의 첫 순간을 성령의 임재로 기술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의 전체를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는 세례요한의 예언적 진술로 정의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종말론적 구원의 역사를 가지고 오신 분이다! 주님의 첫 번째 메시지도 이를 지적한다: 그는 자신을 분명하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 자"(눅 4:18)로 규정하신다. 이사야 61장, 그 당시 메시야 예언의 말씀으로 인정되던 그 해당본문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읽으시고는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선포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시작된 그 분의 사역은 하나님의 해방의 역사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해방의 역사가 바로 자신의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안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시고 성령의 권세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계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십자가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것을 믿지 못했던 것 같다.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고지는 서로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우리에게조차 이 두 가지는 정말 난해한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 성령의 종말론적 구원의 역사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로 엮어지는 계시적 신비를 말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길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이해하는 곳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