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냐, 하나님이냐?

<신학과의 대화>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섭리)

2010-12-02     황덕형 교수(서울신대)

11월에 있었던 두 가지 서로 상반된 중대한 사건들(서울 G20 정상회의, 연평도 사건)은 우리나라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들의 구체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서울 회의나 연평도 사건은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우리가 아는 그 역사적 사건의 인과 관계 말고 혹시 어떤 초월적인 섭리의 이유나 목적을 그 사건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11월 초순에 있었던 서울 G20 정상회의 개최는 이러한 우리의 생각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연평도 사건은 좀 깊이 생각해보면 결국 같은 문제, 쩐(전, 錢)의 문제에 닿아있다. 북측이 이러한 소동을 벌이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들에게 충분한 쩐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하튼 서울 G20 정상회의는 적극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었다는 확실한 선언이었지만, 그 이면은 자본주의의 폐해가 세상을 뒤덮은 현실을 우리 한국 땅에서 다시 명료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던 것이다.

지난 17세기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의 불꽃은 온 세계를 자본주의적 구조로 변환시켰고, 그 오랜 발전의 결과 이제 온 세계는 소비의 성장 없이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체질로 변모하고 말았다. 좋게 말하면 복지의 성장, 부정적으로 아니 좀 유치하고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쩐?(錢)의 전쟁으로만 세계가 움직이게 된 것이다. 이번 회의는 그러한 현실, 그야말로 쩐이 호령하는 세계의 구조와 그 작동원리를 명명백백하게 보여주었다. 환자로 누워있는 이 세계가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쩐의 순환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 세계가 쩐에 얼마나 의존적인 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는 누가 다스리는가? 무엇이 이 세계의 심장을 뛰게 하는가? 무엇이 이 세계를 유지하고 보존하며, 또한 동행하면서 그 방향을 지도하고 있는가?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가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난 뒤 저술한 국부론에서는 국가가 가진 부의 원천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떤 조건에서 더 증폭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는 부를 늘리기 위해서 국가의 규제와 간섭을 배제하고 각 개인의 이기심을 발동시켜서 그들이 스스로 시장이라는 가치결정체계를 형성하기 위해 자유방임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야경국가 형태요, 경제적으로는 자유방임에 근거한 시장경제체제를 선호한 것이다. 특별히 그는 부의 원천이 비옥한 토지나 금고에 쌓아둔 금과 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노동 생산량에 있음을 지적하고 결국 국부란 사회구성원이 소비하는 상품의 총량으로 구성된다고 규정함으로써 초기자본주의의 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스미스는 부를 증진 시키기 위해서는 분업과 효율적인 노동, 그리고 이를 부로 전환시킬 수 있는 시장경제체제가 꼭 필요한 조건임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스미스가 인간을 매우 이기적인 존재들로 파악하여 이것이 오히려 시장형성의 도움이 된다고 설파한 점이다. 그 체계 안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등장한다. 서로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조정되는 과정이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손인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쩐의 흐름을 제어하는 쩐 외의 다른 최후의 원인을 생각하게 한다. 비록 오늘날 가끔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보이지 않는 손’이 쩐의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초월적 원인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 ‘보이지 않는 손’은 예부터 교회가 하나님의 통치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켜 내려온 섭리론의 한 사회 경제학적 대치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쩐의 전쟁을 설명하려는 다양한 시도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보이지 않는 손들’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렇게 그 전제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고전적인 섭리론은 오늘날 이렇게 경제학에 숨어서, 혹은 사회학적 언어 속에서 가끔 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