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신유사역의 재발견을…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사중복음 전도표제로 삼아 부흥한 교단입니다. 그중에서 신유는 성결교회 사중복음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유가 다른 전도표제에 비해서 주목받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성결교회 초기에는 신유사역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타교단과 차별화된 신유집회인 성별회를 통해서 예배의 생명력이 회복되었고 뜨거운 은혜의 체험을 통한 치유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별회 집회를 통해 타 교단의 많은 사람들이 성결의 은혜와 신유와 방언의 은사들을 체험하게 되었고 이 은혜를 체험한 신자들은 자신의 교회에서 부흥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유사역은 어느 시점에 접어들면서 점점 영향력을 잃어갔습니다. 그러나 신유의 역사는 성경과 초기 한국교회 부흥시기에만 일어난 일시적인 역사가 아닙니다.
신유는 말씀을 선포하는 것,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함께 예수님의 3대 사역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신유를 중요한 사역으로 다루셨다면 교회도 복음전도, 교육과 함께 신유를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개 교회마다 교육사역, 전도사역에는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도 신유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교육과 연구가 미미한 것을 보면 목회자들 조차도 신유를 목회의 중요한 사역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유사역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교회부흥과 성도들의 삶의 질과 성숙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역입니다.
육체의 질병, 영혼의 질병, 정신의 질병 또한 요즘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성도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목회는 종합예술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들 삶의 전 영역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유는 실제적이고 체험적이어야 합니다. 목회현장에서부터 신유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본인은 O. R. U에서 목회학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신유 교육을 통한 신앙성숙 방안’ 이라는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기대한 것 중의 하나가 신유의 역사와 전도, 즉 교회 성장이었습니다. 제1차적으로 건강한 교회와 활력 있는 교회의 성장 없이 교회가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교회성장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성장은 전도와 봉사를 포함한 포괄적 선교 즉 복음화와 인간화를 가능케 하고 선교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신유사역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유 사역은 교회 성장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인은 신유 교육을 통해서 성도들의 영성이 개발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내적 성숙과 체험적 신앙에 근거해서 불신자를 향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게 될 것을 기대하였으며 이것은 논문을 준비하고 성도들이 신유 교육을 받으면서 사실로 입증되었습니다.
아직도 신유사역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각들이 있습니다. 신유 운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지적은 성령의 역사를 눈에 보이는 현상적 은사에만 제한함으로써 균형 잡힌 성령 이해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렇듯 눈에 보이는 현상적 은사에만 집착하며 신앙의 본질을 놓치고 영적인 불균형에 빠질 위험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신유는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고 선언하신 성부 하나님의 뜻이며 교회의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루는 역동적인 사역입니다.
목회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한 영혼의 전인적인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행하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위로자, 치유자, 인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내야만 합니다.
목회에 있어서 치유의 기능은 간과될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이므로, 치유의 기능이 사라진 목회는 완전함을 상실한 목회요 병든 목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은 신유를 통해서 성도들의 총체적 건강회복을 이루는 것을 평생 목회 핵심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이것이 21세기에도 교단의 전도표제의 하나인 신유가 재발견되고 강조되어야 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