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중복음>-신유

살아있는 자체가 은총

2010-11-17     이기승 목사(은복교회)

오래 전, AFKN 방송에서 특별 이슈를 다룬 적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심장의 기능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의 심장이 하루에 일하는 분량은 그랜드 피아노 크기의 쇠붙이의 무게를 63빌딩 밑에서 꼭대기까지 20회 들어 올렸다 내리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의학자들은 심장을 반으로 쪼갰다. 이등분 된 심장은 각각 박동(pulse)했다. 물론 박동 주기는 달랐다. 4등분, 8등분, 16등분… 등분할 때마다 쪼개진 심장들은 각자 박동했다. 결과적으로 심장을 구성하고 있는 미세한 세포들(cells)은 각각의 박동을 가졌고, 이 천문학적인 세포들의 박동 주기가 일치될 때 소위 우리가 말하는 피를 뿜어내기 위한 1회의 심장 박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유란 무엇인가? 첫째, 생명의 존속 혹은 유지 자체가 신유의 은총(divine healing)이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신유의 은총이 중단된다면, 그것은 생명의 종말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살아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신유의 은총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는 자의 할 일은 감사와 찬양이다.

둘째, 약을 복용하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의학적인 치유(medical healing)도 하나님이 주시는 신유의 은총의 한 부분이다. “기름을 붓고 기도하라"(약 5:14)는 말씀은 의학적인 치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내가 잘 아는 어는 권사님 큰 딸은 목사 사모였다. 그녀는 유방암을 “믿음으로만 고치겠다"고 고집하며 방사선 치료를 거부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았다. 어떤 이는 그 일을 하나님을 시험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그녀의 여동생은 방사선 치료를 겸하여 완쾌되어 지금은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의학적인 치유는 신유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의학적인 치유에만 의존한다면 이는 바람직한 신앙의 자세가 아니다. 왜냐하면 더 높은 신유의 차원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하고도 더 높은 차원의 신유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supernatural intervine)에 의한 치유다. 이 신유의 역사는 부활의 보증(verification of resurrec tion)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의 기도로 이 은혜를 누릴 수 있다. 믿음의 근거는 이사야 53:4~6과 베드로전서 2:24절 등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뿐 아니라 우리의 약함과 질병을 다 담당하셨다.

본인이 이 은총에 대한 한 증인이다. 군역을 필하고 신학대학에 복학한 연후에 나는 심각한 위장병을 앓았다. 선교사 헤인스 부인이 두고 간 좋다는 미제약을 다 먹고, 그녀가 학교에 위탁해 놓은 돈을 부천에 있는 한  병원에서 거의 다 소비했지만, 차도는 영 없었다. 나는 젊은 나이에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총장실 옆 기도실에서 매일 정기적으로 기도했다. 이사야 본문을 붙들고서. 어느 날 기도 중에 마음속에 음성이 들렸다. 고통이란 병의 증상(symptom)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미 성령께서 내 안에서 신유의 일을 시작하셨다고. 깨끗하게 치유받은 나는 지금까지 건강하며 젊음이 넘치고 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서 하신 일을 할 뿐 아니라,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축사(exorcism)를 비롯한 각종 신유의 역사(divine healing ministry)는 어느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