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어 원어로 푸는 세상이야기(4)

배추가 죽으면 가정도 죽는다! “oi;;koz”(오이코스)

2010-11-10     한국성결신문

한국 사람들의 밥상에 끼니마다 올라와야만 하는 단골메뉴가 하나있다. 다름 아닌 김치다. 김치는 배추를 절인 다음 다양한 양념을 버무리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입에 들어오는 그야말로 전천후 먹거리이다. 그런데 이 배추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는 유달리 많은 장맛비로 발생한 습한 기후 탓에 배추농사가 엉망이 돼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반도의 기후뿐만 아니라 지구의 기후는 갈수록 인간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헬라어에는 이 기후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가족’, ‘가정’,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z)다. 이 오이코스에서 파생된 현대 영어들이 있는데, ‘경제’를 의미하는 ‘economy’, ‘생태학’을 가리키는 ‘ecology’ 등이 그것이다. 신학적으로는 ‘구원의 경륜’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도 economy라고 한다. 그러니까 경제도, 생태학도 결국 가족이라는 유기적 구조나 가정살림이라는 생명성을 기본으로 한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환경이라는 것도 결국 가정살림이라는 근본적인 정신을 토대로 하여 이 지구생태계를 돌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회의 기초 공동체인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생명적인 조건, 물질적인 조건, 정신적인 조건 등을 잘 조화시키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지구라는 생명체도 크게 보면 인간의 가정이나 삶의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구도 인간 생명체가 거주하는 가정, 우주라는 거대한 생명의 한 가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구의 기후 즉 지구의 온도나 습도 등을 민감한 눈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지금 배추값이 급등함으로써 당장 먹거리 전반에 걸친 조화나 우리의 미각에 대한 즐거움에 문제가 생기고 더 나아가서 우리의 생명감정까지도 유쾌하지 않은 실정이다. 그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가정과도 같은 자연이라는 생태계의 질서를 어지럽혀 자연을 착취하고 수단화하면서 대량생산과 과소비라는 매커니즘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지구 가정에 과부화가 걸린 것이다. 지금은 배추 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 야단법석이지만 언젠가는 물, 공기, 흙 등의 환경오염이 심각해져서 인간 자신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지옥 같은 상황이 전개될지 모른다.

오이코스와 동족어인 ‘오이케시스’(oikesis)는 죽은 자가 거처하는 ‘처소’ 혹은 ‘무덤’이나 ‘죽음’이라는 뜻과도 연관되어 있다. 오이코스를 소홀하게 여긴다면 언젠가 오이케시스가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여기에 헬라인의 지혜가 있는 듯하다. 가정과도 같은 지구생명공동체를 잘 관리하여 사랑을 나누며, 먹고 사는 모든 생계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노력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곧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 우주는 하나님께서 인간만을 위해서 창조해 놓으신 피조세계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자연 모두를 창조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분의 정신과 마음이 담겨 있는 이 지구를 잘 관리하고 보전하는 환경청지기를 잘 수행하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서 지구의 생명살림을 잘 못한다면 생명공동체인 지구 가족 전체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슬픈 현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올 가을 단풍은 유난히 아름답게 물들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단풍을 보기 위해 이 산 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단풍놀이를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보는 안토시아닌 색소의 붉은 단풍잎은 일교차가 심할수록 좋고, 강수량과 일조량과도 영향이 있다고 하니 너무 충분한(?) 수분으로 아름답게 물들었나 보다. 한쪽에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서 배추값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또 한쪽에서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었다고 이 산 저 산 명산을 찾아 오르락내리락한다고 하니 세상 참 요지경이 아닐 수가 없다.

배추가 품귀여서 김장하기도 어렵고 음식점에서 김치를 더 달라고 청하기도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이때에 단풍놀이를 자제해달라는 말이 아니다. 더군다나 배추파동을 예측하여 산지를 미리 사들였다가 적당한 시기에 판매하여 차익을 챙기려는 대형마트의 전략적 행위도 나무랄 힘도 없다. 다만 지금 우리가 처한 기후의 변화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만 한다.

이제라도 교회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 가족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가장(家長)이신 그분의 뜻을 올바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목회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자연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지구 가족을 위한 환경교육에 하루속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