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순교자 얼마나 되나
성결신앙 고수하다 고문·고초 당해
일제시대·한국전쟁 지나며 168명 순교
오늘날 한국교회가 선교사, 신앙선배들의 순교의 피 위에 터를 닦은 것처럼 본 교단의 성장·성숙도 숭고하고 아름다운 순교신앙이 뒷받침됐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지나면서 교단 안에 168명의 순교자가 발생했으며 납북, 투옥, 행방불명 등을 합치면 약 270여명이 수난을 겪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결교회는 재림사상 때문에 일본정부의 박해를 받은 대표적인 교단이다. 일본은 개신교의 재림사상이 일본의 국체명징과 대립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교회를 탄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성결교회에도 순교자들이 나오게 됐다.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일경에 끌려가 고문과 고초를 당했으며 본 교단에서도 재림사상 고수 및 신사참배 불응으로 최초의 순교자인 박봉진 목사를 비롯 김하석 목사, 김지봉 목사, 정태희 장로 등이 순교했다.
해방 후 터진 6.25한국전쟁은 한국교회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자신들의 주 척결대상으로 삼고 말살을 기도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지키다 순교했다. 공산주의자들의 블랙리스트에 들어간 기독교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납치·감금·구타·고문·학살 등의 잔혹한 폭행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집단학살이 여기저기서 자행됐으며 성결인들도 순교의 십자가를 져야했다. 당시 목사·장로·전도사·집사 등 27명이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 순교했으며 병촌교회 66명, 진리교회 48명, 두암교회 23명이 집단 순교하는 등 한국전쟁 당시 164명이 순교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도 납북자 6명, 6.25 전후 피랍으로 인한 행방불명 8명, 북한에서의 투옥 20명, 남한에서의 투옥 76명 등 총 274명이 한국전쟁 당시 교단의 수난자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