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있는 삶

(요 4:3~30)

2010-09-01     정대영 목사(왕성한교회)

과거, 현재,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절실한 과제는 무엇일까? 내 좌우에 난제들이 있지만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절실한 그리스도인의 가족들에게 있는 과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한국교회의 장래는 그다지 밝지만은 않습니다. 각 교단의 최대의 교회는 주로 한국에 포진해 있을 정도로 세계의 교회는 한국교회를 주목하고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10년 이후 70년대와 80년대의 눈부신 교회 성장은 이미 추억이 되었습니다.

사회와 민족을 향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는 오히려 사회로부터 개혁과 변화를 요구 받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의 기세는 약화되어가는 듯한 인상을 주고 수치적으로도 성장이 둔화내지는 약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듯한 위기감 마저 들고 있습니다. 기세가 약화된 것 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약화된 기세를 힘 있게 반전 시킬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내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시던 중에 수가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음식을 마련하기 위하여 마을로 내려가 피곤에 곤하여 우물가에 앉아 있는데 한 여인이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러 왔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물을 좀 달라’ 말을 건네셨습니다.

이 여인은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그때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그리고 내가 주는 물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그렇다면 제게 그런 물을 좀 주세요.’ 라고 대답 할 때에 예수님은 문뜩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는 윤리적인 문제를 꺼내셨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여인에게 ‘네가 남편이 없다하는 말이 맞다. 너에게 남편이 다섯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가 말하는 것이 맞다’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 치우면서 행복한 것처럼 살아왔습니다. 잘생긴 미남하고 살면 행복 할 것 같아서 미남과 살아보았고, 경제력이 든든한 남자와 살면 괜찮을 것 같아서 재벌과도 살아 보았고, 또 권력가가 좋아서 명예과 있고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명 서방하고도 살아보았습니다. 목사가 좋아보여서 목 서방하고도 살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목 서방은 늘 예배만 드리고 심방만하고 새벽예배 드려라, 성경공부하라, 제자훈련하라,섬기고 봉사하고 섬기고 겸손하며 십자가를 지라 하니 이것도 아닌듯 했습니다.

여기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 모든 행복을 소유하려고 몸부림치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주님과 나의 육신적 욕망의 혼돈된 행복의 무지개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메시야인 예수님을 만난 후 물두멍을 버려 두고 동네로 황급히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러고 예수님을 자신있게 전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삶의 목적이 변하였습니다. 또한 힘도 얻었습니다. 지금 교회의 전문가들이 넘쳐 납니다. 신학자들도 넘쳐납니다. 목회자들도 넘쳐납니다. 곳곳마다 교단마다 신학교를 세웁니다. 방법은 다양하나 변화와 동력의 힘은 기대만큼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여인에게 필요한 것은 물도 다섯 남편도 아니고 메시야였습니다.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세상적 공로가 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