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매미가 들려주는 노래
(갈 6:9)
한 당나귀가 나무 밑에 있는데 매미소리가 너무 아름답게 들렸다. ‘너희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기에 그리 목청이 좋니?’ ‘이슬.’ 그 날부터 당나귀는 ‘이슬'만 먹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당나귀는 일주일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누군가 그랬다. 술집에서 ‘이슬'만 먹는 사람들은 그렇게 곧 다 죽는다.
‘사제(師弟)’라는 단어가 방사하듯 우리는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한 여름의 나팔수라 할 수 있는 매미로부터 소박하나마 인생살이의 교훈을 얻는다면, 이 여름의 매미 소리를 듣는 것 또한 하나님의 큰 축복이리라.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매미의 수명은 보통 6년이다. 매미는 그 6년 중 5년 11개월 동안을 땅 속에서 애벌레로 지낸다. 땅 속에서는 나무뿌리의 즙을 먹으며 지내다가 4번째 껍질을 벗은 후 정확히 6년째가 되는 여름 어느 저녁 무렵 땅 위로 올라온다. 이때 땅 위로 치솟는 매미의 힘은 아스팔트도 뚫을 수 있다. 곤충의 경우 유충이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는 변태과정을 ‘우화(羽化)’라 하는데, 드디어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지상으로 올라온 매미는 가까운 나무의 등걸을 타고 오르다가 5번째 허물을 벗고 비로소 매미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나 어렵사리 매미가 되었지만 불과 4주가 지나면 죽음을 맞는다. 매미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줄 알기에 그 4주로 제한된 기간 안에 암컷을 불러 처절할 정도의 몸부림으로 남은 삶의 사랑을 노래한다. 혹 매미의 이 노래 소리를 듣고 새나 다른 짐승들이 그를 먹이로 노획하기 위해 다가선다 할지라도 그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권태롭게 여기는 오늘이라는 날이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려는 듯, 매미는 일분일초를 아껴 더욱 굵은 목소리로 열정의 노래를 부른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2)”는 메시지를 담아서 말이다.
옛 선인들은 촌음을 아껴 삶을 확장해 나가는 매미에게서 인생살이에 관한 윤리적 교훈을 얻었다. 우리나라 만원권 지폐에는 곤룡포를 입은 세종대왕께서 매미 날개 형태의 ‘익선관(翼蟬冠)’을 쓴 화상이 그려져 있다. 진나라의 시인 ‘육운(陸雲)’에 따르면, 매미는 ‘문(文), 청(淸), 염(濂), 검(儉), 신(信)’ 오덕(五德)의 선생이다. 그래서 왕은 나라를 보살필 때 익선관을 쓰고서 매미의 오덕을 실천하는 현군의 사명을 다해야 했다.
먼저 매미의 입이 마치 선비의 갓끈과 같이 곧게 뻗은 것처럼, 왕은 문무를 배우고 익혀 선정을 베풀어야 했다(文). 매미가 이슬이나 나무진을 먹고 사는 것처럼, 왕은 청결한 삶을 살아야 했다(淸). 매미가 곡식이나 채소를 해치지 않는 것처럼, 왕은 청렴해야 했다(濂). 매미가 다른 곤충과 달리 집이 없는 것을 본받아, 왕의 생활양식 또한 검소해야 했다(儉). 늦가을이 되면 때를 맞추어 죽는 매미의 절도처럼, 왕은 신의를 지키는 현군이어야 했다(信).
일찍이 ‘요한 웨슬리(John Wesley)’는 “열매를 볼 때까지 사랑의 수고를 멈추지 말라”고 강조했다. 어제의 수고가 영글어 오늘의 결실로 나타나듯 오늘의 수고가 영글어 내일의 결실이 되기 때문이다.
땅속에 묻힌 씨앗은 결국에는 싹이 트고 풍성한 수확을 가져온다. 만일 당신이 자녀를 둔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삶에 필요한 지식과 교훈을 계속해서 가르쳐 왔지만 아직까지 수고의 열매를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장래도 열매가 없을 것이라고 미리 판단하지 말라.
‘당신이 물에 던진 식물(전 11:1)’은 아마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반드시 발견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믿음을 견지해 나간다면 반드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선한 응답을 받게 된다. 성경은 권고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오늘도 매미는 어제와 오늘의 수고 속에서 희망이 영글어간다는 가르침의 노래를 힘차게 들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