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과 사중복음(재림)

재림, 뚜렷한 것 둘

2010-07-22     지형은 목사(성락교회)

인간 정신이 위대한 것은 자신을 대상으로 놓고 볼 수 있어서다. 이것을 생각이라고 한다. 생각이 너무 일상적인 말이라면 철학적 색채가 담긴 사유란 단어를 떠올리면 된다. 사람 정신의 사유는 논리를 따라 추리하기도 하고 직관으로써 상상하기도 한다. 상상은 현실과 이어지기도 하지만 상상이 깊어지고 넓어지면 현실을 훨씬 뛰어넘은 가상 세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창조란 단어를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생각의 힘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사람이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상상의 세계는 현실이나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가상이 현상에 영향을 준다. 현상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게 바뀐 현상은 다시 더 놀라운 가상을 창조하는 데 이바지한다. 가상과 현상은 이렇게 서로 이어지면서 늘 가변적이다. 그래서 가상의 세계를 ‘가상 현실’ 또는 ‘증강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아이티(IT) 산업 기술과 연관시켜 생각하면 쉽게 이해되는 일이다.

이 글의 주제는 재림이다. 재림 얘기에 왜 갑자기 인간 정신이니 가상 현실이니 하는가. 연관이 있어서다. 재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둘이다. 하나,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오신다. 둘, 그 날 그 때는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마가복음 13장 32절에 이 사실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천사는 말할 것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분이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엔 모르셨다!

자, 이 구절에 토를 달지 말자. 이 구절은 복잡하지 않다. 애매하지 않다. 간단, 그리고 명료하다. 더구나 쉽다.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문장 구조를 갖고 있다. 성경을 해석하는 기본 원리 좀 보자. 신약의 빛에서 구약을 이해한다. 명료한 구절을 근거로 명료하지 않은 구절을 해석한다. 억지로 풀지 않는다. 자기 생각이나 논리에 빠져 소설을 쓰면 절대로 안 된다. 진짜로 소설을 쓰면 문학이 되지만, 성경을 해석한다며 소설을 쓰다간 이단이 된다.

재림에 대해 가장 중심적인 가르침은 위에서 말한 두 가지다. 재림에 대해서 성경은 자세한 과정이나 내용을 기술하지 않는다. 그건 성경의 목적이 아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고, 물질의 풍요로움과 육신적 쾌락에 물들지 않고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하는 것이 재림을 언급하는 목적이다.

교회 역사에서 재림의 시기와 날짜, 재림의 단계적인 과정과 상세한 내용을 확정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엉터리 같은 사기꾼은 논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아주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한 사람들이 꽤 있다는 데 있다. 존경받는 18세기의 성서학자 요한 알브레히트 벵엘(Johann Albrecht Bengel, 1687-1752)도 예수님이 아마 언제쯤 재림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건 단순하게 내 생각’이라고 선을 그어 성경 말씀을 삶으로 살아낸 사람임을 보여주었지만.

성경을 연구하다보면 사람의 정신이 자기도 모르게 창작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때가 있다. 성경의 여기저기를 살피며 연구하고 원어를 분석하다보면 ‘어느 모르든지 정신에 잡히는 논리적 연결 구조’가 보인다. 다니엘서의 “한 때 두 때 반 때”(7:25, 12:7) 등을 비롯한 묵시록 계통의 책을 연구하면서 예수님 재림의 때를 확정하고, 재림의 과정과 상세한 내용을 구성하는 게 그래서다.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의 재림에 대한 구절들은 명확하거나 쉽지 않다. 마가복음 13장 32절과 비교해보라. 명확성, 단순성, 이해의 난이도에서 하늘과 땅 차이 아닌가. 인간 정신의 위대한 능력을 틈타서 연구자들을 비틀어놓는 사탄의 계략에 빠지는 것이다. 재림의 시기, 과정, 내용을 확정하는 것 말이다.

누가복음, 사도행전, 베드로서 등 성경의 많은 책들이 일관되게 말하는 재림의 가르침을 떠나지 말자. 재림에서는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라’는 메시지가 중심이다. 물론,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오신다. 언젠지는 모르지만. 늘 기다리며 기대하며 주님 닮아 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