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목사님 휴거 되신 거 아니시죠?

2010-07-03     황현수 목사(대기리교회)

가끔 지구 전체가 한 개의 섬이란 말로 자위하곤 하지만 그런다고 섬 생활의 불편과 제한된 편의시설 형편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옆집 마실가듯 출입하던 대중목욕탕이 없고, 가족 나들이 겸 문화생활의 첨병이랄 수 있는 극장출입이 불가능한 것은 근검절약(?)과 가정 경제 살리기로 위안한다고 해도 119 혜택의 사각지대임을 피부로 절감할 때면 참으로 거시기(?)하다.

섬 생활 10여년에 습관적인 기도제목으로 ‘주님 급한 일 생기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간구하지만 이따금씩 응급처치의 지체로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를 보면서 아쉬운 입맛을 다시곤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내외적으로 압박해오는 교육적 환경의 열악함과 도농간의 격차는 교육의 기회 균등이라는 허울에 자괴감을 감출 수 없고 자식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 지기까지 하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섬 생활의 애환과 더불어 보람과 기쁨도 있으며 때 묻지 않은 인간미를 만나고 느끼는 풋풋함도 풍성한 편이다. 여하튼 필자가 거주하는 섬은 약 3600여명이 거주하는 사람 사는 곳이다. 살맛나는 곳이며 살만하다는 고백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임자면의 부속섬인 재원도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으로부터 얼마 전에 문자가 왔다.(감찰모임으로 연 중 1회 정도 방문하는 자그마한 섬으로 약 20~3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곳에 교회가 있다.) ‘목사님 휴거 되신 거 아니시죠?’. ‘이것 참 웬 잠꼬대냐’라고 일언지하에 홀대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공감이 간다. 외람된 고백이지만 아주 조금, 개미 눈물만큼 납득이 간다.

섬 생활의 외롭고 쓸쓸한 고적감을 촌철살인하게 표현하신 문자 편지가 클로즈업되면서 지난번 은평교회의 환대와 섬김에 진한 감동이 다시 인다.

2박 3일간 전남동·서 지방회 목회자 가족(102명)을 참으로 따뜻하고 훈훈하게 대접해 주셨다.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 입성. 때마침 일기까지 화창하여 거의 금강산까지 보일 정도로 가시거리가 먼 서울풍경을 남산타워에 올라 조망하는 기분 좋은 첫 출발을 하였다. 발아래 천해만리라더니 세계 중심도시로 도약하는 서울이 발아래 펼쳐져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깨가 절로 펴지고 으쓱, 호연지기가 쑥쑥 솟구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감사예배를 드린 후 상다리 휘어지도록 저녁 만찬을 나누고 그토록 타보고 싶었던 한강 유람선에 오르니 돌연 김삿갓 시인이 된 듯 시심이 솟아나고, 출렁이는 물결은 어느덧 콧노래의 박자를 맞추었고, 잠수교의 야경과 분수 쇼는 시름을 씻어주고, 새 힘을 주는 환호성으로 메아리쳤다. 도심을 벗어나 숲속 호젓한 수련원에 여장을 푸니 수학여행을 나온 듯 삼삼오오 까르르 깔깔 이야기꽃을 피웠다.

둘째 날 아침 신령한 양식을 나누고 오후에 청와대 가서 눈도장 찍고, 대한민국 문화 1번지 대학로에 가서 ‘광수 생각’ 연극을 웃기도 하고, 울컥해져오는 감흥을 맛보았다. 끈끈한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나누는 정겨운 장면은 깊은 울림을 안겨주었다. 연극이 끝난 후 도서민의 갈증을 남대문시장에서 심야의 쇼핑으로 채워주어 센스만점이었다.

벌써 아쉬운 셋째 날,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족구를 신나게 한판 하고 땀과 섞어 먹는 아침밥의 꿀맛을 온몸으로 적시고 세종로로 향해 경복궁을 거닐었다. 조선왕조 500년의 찬란함도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는 한 점과도 같음에 고개를 들어 푸르고 푸른 하늘을 보며 주님을 가만히 불러보았다. 길고도 짧은 서울 나들이에 흐믓한 추억 가득 안고, 선물을 가득 안고, 웃음 가득 머금고 고향을 향하여 출발하는데 교우들과 목사님 사모님의 손 인사에 콧등이 시큰거렸다. ‘또 불러주이소’하니 참 염치도 좋다.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연신 환한 미소로 진지를 올려주신 여 성도님들, 퇴근 후 정장을 하고 우리를 보필하듯이 동행하신 남 성도님들의 얼굴에서 진한 애정과 예우의 마음을 넘치도록 느낄 수 있었다. 한태수 목사님의 큰 목회란 숫자에 있음이 아니라 한 영혼을 크게 생각하고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것이라는 통찰과 목회자의 가슴에 성령의 불꽃을 지핀 세미나는 전체 여정중의 화룡정점이었다.

아~ 나도 이런 섬김의 손길이 되고 싶다. 기적 같은 목사 인생, 환희의 도가니. 고맙고 고마울 뿐, 주님께서 갚아주시고 더 풍성케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