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이야기들
지난 5월 27일 막을 내린 본 교단 제 104년차 총회의 최대의 이야기 거리는 아마도 부총회장 당선 건이 아닌가 사료된다. 주남석 목사님의 운동원들 입에서조차 “우리들도 선거 결과에 대하여 놀랐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범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로서는 그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대하여 주님의 뜻과 섭리로 돌려야 할 것만 같다. 선거 결과에 대한 이야기는 접고, 보다 화합하는 총회, 좀 더 성숙한 회의 문화를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고 싶었지만 여건상 하지 못했던 말을 지면을 통해 피력해보고자 한다.
우선 장시간 개회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회원자격이 문제가 되어 서무부와 심리부, 서울중앙지방과 서울남지방 간에 갈등과 대립 양상을 보였던 그 사건 말이다. 일단 서무부장과 서울남지방 측의 불법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어 보였다. 또한 지방회를 탈퇴하여 타지방회로 가려는 목사나 교회에 대하여 고운 시선을 가질 수 없고 무엇보다도 그런 식의 이동이 선례(先例)가 되면 꼬리를 물고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여 교단의 질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 어떤 주장이나 논리를 따르기보다는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제자들이다. 그러면 이런 경우에 있어서 예수님은 어떤 판단을 내리신다고 보아야 하는가? 예수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한 여인을 율법대로 쳐 죽이려는 무리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말씀하셨다. 즉 “법보다는 사람이 우선하고, 법의 집행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사랑이 우선이다”라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법적 잣대로 접근하기보다는 “오죽하면 지방회를 떠나려고 했겠느냐”는 이해와 사랑의 심정으로 다가갔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수의 마인드로 처리했더라면 모두가 승리자가 되어 얼마나 화기애애한 성총회가 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볼 때 너무나 아쉬운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묘한 진행과정을 거쳐 통과되어 버린 결과 불법이라고 주장하던 쪽에 패배감을 안겨다 줄 수밖에 없어 회의 벽두부터 차갑고 무거운 분위기가 총회 석상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표기 모양을 변경하는 건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할 때 모 대의원이 “참 쓰잘 데 없는 것을 가지고…”라고 하면서 제안자를 다소 경멸하는 투의 반대 발언을 한 것과 또한 어떤 발언자의 내용이 맞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 “우…” 소리를 내거나 “그만해, 내려와” 등의 고함을 치는 회의 모습에 대해서다.
총회 대의원들은 주님의 종들이요 또 각 지방회에서 선출된 교단의 엘리트들이므로 마땅히 존중해야 할 귀한 분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십인십색이므로 각기 다른 생각과 견해를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어리석게 보이는 안건일지라도 조소(嘲笑)하는 태도로 반대 발언하면 안 되고 또 아무리 타당성이 없게 보이는 발언일지라도 회중 가운데서 그 발언을 제지하거나 야유를 보내서는 안 된다.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경청하는 것이 예의요 성숙한 회의 문화가 아니겠는가?
끝으로 아현교회가 옛 성서학원의 건물을 허물고 재건축하려는 건에 대해서는 총회가 대책위를 구성하거나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성질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미 교단이 버려 다른 데로 넘어갔던 건물을 교회가 매입한 것이므로 법적 처리 권한이 전적으로 아현교회에 있기 때문이다. 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관심을 갖는단 말인가! 그러므로 기념동판을 세워 영원히 기억하게 하겠다는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가는 존재이므로 옛 향수 때문에 아현교회의 발전을 막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교단총회가 더욱 내실있고 성숙한 모습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