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문준경 전도사님께’
가시밭의 백합화가 그려져 있는 성결교회 주일 포스터가 교회에 붙어있었어요. 소소한 거지만 아쉬운 마음이 살짝 들더군요. 꽃송이가 여럿인 백합은 개량된 백합으로 향기가 거의 없거든요.(원래 교단 마크에는 한 대궁에 핀 한 송이지요.)
친정집 뜨락에는 아주 오래된 백합 두 그루가 있었습니다. 피어나는 꽃이라야 두 송이 아니면 잘해야 세 송이가 피어나곤 했지요. 하지만 그 작은 꽃송이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는 온 마당을 감싸고도 남아서 고요한 저녁나절이면 동네 어귀쯤에서도 향기가 풍겨나곤 했어요. 향기는 깊지만 무형의 존재잖아요. 사람들은 선택한 거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대신 보기에 좋은 여러 꽃송이를 말이지요. 보아야 알고 만져야 아는 도마 같은 현대인들을 위한 개량이지요.
전도사님 전도하시던 섬나라 ‘증도’로 들어서니 봄은 가일층 눈부시더군요. 깊어가는 봄 사이로 여름이 살짝 발을 들이민 ‘찔레꽃머리’ 즈음 이라 더욱 그랬을지도, 모를 심기 위해 물 받아 놓은 논에 오월의 햇살이 내리비치니 작년 벼 베고 남은 그루터기들조차 꽃으로 화하던걸요. 진초록 양파 밭은 묘령의 처녀처럼 싱싱한 생기 넘치고 잎 가장자리 말라가며 온몸의 진기를 뿌리 속으로 보내는 마늘도 중년 여인의 성숙한 태처럼 고와보이던걸요. 오월, 남도의 야트막한 산야는 온통 연두의 절정이었어요. 만약 천국의 색이 있다면 저런 연두빛 아닐까,
도시의 낮은 집들이 가난을 나타낸다면 증도의 자그마한 집들은 평화스러워 보였고 파랗고 붉은 지붕의 색이 도시에서 촌스럽다면 증도에서는 산야에 피어난 꽃들처럼 보였어요. 물론 언덕위의 예배당들은 더 말할 나위 없었구요. 마음 탓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나라로 훌쩍 옮겨온 거지요. 전도사님 순교유적지가 있는 증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천일염전이 있고 또 가장 질 좋은 소금을 만든다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럼 그럼, 혼자 미소를 지으며 생각해봤습니다. 순교로 까지 이어진 복음의 증인, 산 소금이신 문준경 전도사님의 유적지인데 그 소금의 질이야 말해 무삼하랴.
전도사님 순교하신 장소 주변에 다다르니 해당화가 그득하더군요. 증도에서는 ‘매람화’로 부른다는, 피어났다 금방 진다는 그 꽃말이지요. 전도사님 비석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기에는 왠지 마음이 허락칠 않아 아늑한 시골마을이나 지방회 농어촌부에서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모습을 찍거나 소나무꽃을 찍거나 하며 한참 딴전을 피웠어요.
공산당에게 끌려간 전도사님의 죄목이 ‘새끼를 많이 깐 씨암닭’ 이었다고 김준곤 목사님께서 쓰신 추모글에 나왔더군요. 그리고 더한 죄목은 ‘그냥 놔두면 분명 더 새끼를 많이 깔 씨암닭’이었다구요.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란 적나라한 문장 속에서 가시밭의 백합화가 품어내는 깊은 향기를 들이키는 것은 설마 저만의 일일까요. ‘그냥 놔두면 분명 더 새끼를 많이 깔 씨암탉’이라는 생래적 문장 속에서 거룩한 슬픔과 거룩한 비전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전도사님 목소리가 아름다우셨다구요.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허사가를 부르면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구요. 아무리 안 믿으려하는 사람도 전도사님을 만나게 되면 저절로 믿게 되었다니(이만신 목사 증언) 작은 교회 사모이면서도 능력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게 전도사님은 닿을 수없는 진정한 가시밭의 백합화이시지요.
천사개 섬이 모여 천사의 섬이라고 부르는 섬나라의 복음의 씨앗이 되신 문준경 전도사님! 사제이며 간호사이고 산파시자 만인의 어머니, 복음의 어머니이신 전도사님이 뿌린 씨앗으로 미신이 횡행하던 증도에는 90%가 기독교인이고 무엇보다 거의가 우리 성결교회라는 대단한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답니다.
해당화가 많이 피어나 한 송이 꽃처럼 보인 화도에서 증도로 가는 길은 이젠 차가 지나가는 길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전도사님 시절에는 돌로 만들어진 징검다리였겠지요. 섬과 섬을 이어주는 다리, 그러나 물이 들면 사라지고 물이 빠져야 들어나는 노두길, 문득 그 노두길을 보며 천국 가는 길도 노두길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요.
영적으로 바라보면 너무나 환하고 빛난 길이지만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아무리 눈을 비벼도 보이지 않는 길, 아무려나, 보이든 보이지 않든, 너무나 분명히 존재하는 길 말이예요. 혹시 전도사님께서도 일 년에 아홉 켤레의 고무신을 닳게 할 정도로 전도 하시면서 그런 생각 하시지 않으셨을까요, ‘내게는 이다지도 선명한 길이 당신들에게는 어이 그리 보이질 않는다는 말인가’
서울서지방 농어촌부 주최 수련회를 증도로 다녀온 후 자꾸만 전도사님 다니셨던 노두길이 눈에 어른거려서 이 글을 씁니다. 조금 있으면 친정집 뜨락에서 향기 높은 백합도 피어날거구요. 전도사님~~ 그곳에서 제 연서(戀書) 읽어주시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