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시편147:5)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능력을 믿습니다. 사람에게는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이 있고,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이 있지만 하나님께는 다 쉬운 일이고 다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오늘도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은 신앙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의 가장 첫 부분에서 이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만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만큼 하나님의 지혜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은 능력만 아니라 지혜에도 한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완전하게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오류가 없으시며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은 다 최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완전하신 능력뿐만 아니라 완전하신 지혜까지 믿는 것입니다.
초막절이 가까운 어느 날, 예수님이 갈릴리에 머물고 계실 때에 예수님의 형제들이 나아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능력이 많은 분인데 이곳에 그냥 묻혀있지 말고 명절에 속히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의 말은 예수님이 잘못 판단했다는 말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행동이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란 말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포착한 요한은 이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그 능력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타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지혜에 대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예수님을 판단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은 잘 믿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잘 믿지 못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매사를 하나님의 능력에만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데 왜 병을 고쳐주시지 않고, 왜 사업을 일으켜 주시지 않고, 왜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계속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들은 나에게 질병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지혜, 나에게 실패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능력만 믿는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왜 그렇게 무능력하게 죽어야만 합니까? 당장 십자가 위에서 내려와서 유대인들과 로마병정들을 멋있게 때려눕혀야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능력의 하나님답지 않습니까? 왜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고뇌하며 그렇게 힘없이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까? 너무나 하나님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엄청난 지혜입니다. 십자가가 인간을 구원하는 최선의 방법이며 또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방법을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다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지혜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들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다 최선의 일이요, 다 좋은 일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일이 비록 나에게 슬픔과 고통을 주고, 손해와 실패를 주고, 죽음을 준다고 해도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를 온전히 믿는 믿음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도 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균형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라고 고백한 시편기자의 믿음이 바로 그런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