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부흥운동 산파 최동규 목사 소천
계룡산 집회로 성령운동 힘써 … 최초 4형제 목사, 아들 4형제도 목사로
2009-11-28 황승영 기자
고 최동규 목사는 1960년대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로 1960년 8월 계룡산 양정기도원에서 ‘사명자를 위한 특별 집회’를 열어 초교파적인 부흥운동과 산기도운동을 일으켰다. 특히 당시 사명자 집회를 통해 한국의 유명한 부흥사들이 배출되었다. 한얼산기도원 이천석 목사를 비롯해 오관석 목사(중앙침례교회), 김충기 목사(강남교회), 윤석전 목사 (연세중앙침례교회) 등이 대표적인 목회자들이다.
또 길산교회 재임 당시 40일 연속 특별집회와 기도회 등 성령과 신유사역을 통해 출석성도 350명을 1년 만에 1300명으로 부흥시켜 주변을 놀라게 했으며 길산과 밀양, 신례원교회 등 부임하는 교회마다 교회당을 신축하는 등 교회발전에 헌신했다.
1923년 충남 부여군 석동리에서 태어난 고인에게는 집안에 특이한 신앙내력이 있다. 고인을 비롯해 동생 3명도 목사로 헌신해 한국 최초의 4형제 목사로 주목받았고, 장남 최종진 서울신대 전 총장을 비롯해 아들 4형제도 목사로 만들었다. 특히, 일평생 고인 이름의 통장이나 부동산 없이 청빈한 삶을 실천하기도 했다.
최 목사는 생전에 아들 목회자들에게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잊지마라. 하나님 외에 물질이나 명예에 집착하면 차라리 목회를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며, “목회자의 승리의 길은 오직 십자가 밖에 없다. 복음을 눈물과 땀으로 반죽해서 지성소에서 기도로 구워 양들에게 먹일 때 그들이 살쪄간다"고 충고했다.
고인은 충서지방회장과 총회 고시위원, 법제부장, 서울신학대학교 감사를 역임하는 교단 발전에도 기여했다. 미국 동양선교교회 임동선 원로목사와 고인이 된 정진경 목사, 임영재 목사 등이 서울신학교 동기들이다.
장례식은 조용하게 치러달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지난 11월 21일 가족장으로 거행되었으며, 유해는 천안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유족으로는 김덕례 사모를 비롯해 장남 최종진, 종명, 종철, 종인 등 6남 2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