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내가 할 수 있는 일

(시 109:1~10)

2009-08-29     최일만 목사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 같습니다. 이해하고 덮어주고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삶의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쉬운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목회를 하는 우리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그냥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우리를 당황케 한 사건은 양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사업 자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33년 전 집 앞 대문에 버려진 자신을 데려다가 친 자식처럼 키워주신 어머니를 무참히 살해한 참 끔찍한 사건입니다. 돈이 무엇이고, 재산이 무엇인지 33년의 사랑 어린 세월을 무시한 채 한순간에 살해라니요? 사랑을 배신했다고 말해야 할까요? 말도 안 되는 일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가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시편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읽다가 다윗의 마음 때문에 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성군 중에 성군으로, 대장부의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것을 이겨낼 사람이죠. 그런데 여기서 본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랑 때문에, 그리고 어쩌면 의리 때문에 그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을 공격해 오는 것은 외부의 전쟁이나 무서운 전염병, 또는 정치적인 난관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 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악한 말, 거짓된 말, 미워하는 말과 까닭 없는 인신공격을 했고, 그것은 참기 힘든 모욕이었기에 다윗에게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 되었던 것이죠.

다윗에게는 풀기 힘든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사울이었죠. 젊은 다윗이 사울을 향해 어떤 어려움이나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닌데 물맷돌을 가지고 골리앗 장군을 무찌른 이후 사울은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습니다. 사울은 변심해 지독할 정도로 집요하게 다윗의 일거수일투족에 몰입했습니다. 심지어 다윗을 미워하며 죽이려고 쫓아다니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에게서 도망 다니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윗이 왕이 된 후, 잘 뒀다 싶은 아들 압살롬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다윗이 풀기 힘든 두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변 백성들이 말 타고 긴 머리 휘날리며 다니는 잘생긴 압살롬을 향해 차세대 임금감이라고 칭찬할 때 젊은 압살롬은 한참 오해를 했던 겁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제거하고 자신이 그 보좌에 앉겠다는 야망을 품었고, 다윗은 아들 때문에 쫓겨 다니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본문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세상은 사랑만으로 되는 것은 아닌 듯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무엇인가 대가성을 바라는 마음이 내 안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어느 사람들은 본문을 저주의 시라고도 합니다. 다윗이 마음에 있는 것 없는 것까지 하나님 앞에 다 쏟아 놓고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차라리 공의의 하나님이시니까 심판하시기 원하는 다윗의 마음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사실 목회를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경험하게 되는데, 다윗처럼 하나님께 여쭙고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알았기에 그들을 모두 품고 갔던 것이죠. 아마 사람을 상대로 살았다면 인생을 실패했을지 모릅니다.

목회는 누구든 온도의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내가 할 일은 무엇보다도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무릎으로 나아가 기도하는 일일 뿐입니다. 요즘 들어 다윗을 보면서 목회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더 간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