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산장애인연합회장 전기수 집사

장애인복지 마당발로 의욕적 활동
사고로 하반신마비, 단체 변화 갱신 주도, 히말라야 등정도

2009-07-25     조재석 기자

군산시 장애인연합회 회장인 전기수 집사(군산중동교회·사진)는 군산시 장애인들을 위해 오늘도 바쁘게 일하고 있다. 그는 장애를 입었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믿음을 가진 후 긍정적 생각을 하게 됐고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으로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장애를 갖게 된 것은 92년이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당하고 1년여 병원신세를 지게 됐다. 하지만 그에게 장애는 신앙에 눈을 뜨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한 원동력이 됐다. 집안이 무당을 섬기는 집안이었는데 어머니가 병원에 오더니 이번 주부터 교회에 나가겠다고 말씀하셨고 전기수 집사 또한 병문안을 온 사람들의 기도가 편안함을 갖게 하는 경험을 하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신혼이었던 92년 11월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신앙의 눈으로 돌아보면 장애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었고 지금의 나를 있게 했습니다.”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하면서 장애인 단체도 알게 되었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 휠체어 테니스 모임을 창단해 적극 참여했고 같은 재활병원에 다니는 환자들을 보면서 자신보다 더 심한 환자들의 모습에서 위로 받고 자신감도 가지게 됐다.

퇴원을 한 후 그는 아내와 상의해 생활 터전을 군산으로 옮겼다. 부산에서 일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사고를 당한 후 부산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군산에 오면서 운명처럼 군산중동교회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군산생활. 그는 장애인 단체에 등록하기 위해 장애인협회를 찾게 된다. 그런데 그는 마치 이상한 사람이 온 것처럼 ‘왜 왔느냐’는 분위기를 느끼게 됐고 아 뭔가 변화가 필요하구나 생각을 갖게 됐다. 그의 적극적인 성품은 등록 후 1년 만에 지회장의 책임을 맡게 되는 밑거름이 됐다.

“사실 지회는 18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회장이 수시로 바뀌는 등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회장으로서 지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회원들과 연합회에서 이를 인정해 주어 2006년에는 전국 230여개 지회 중에서 최우수지회로도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올해로 11년째 지회장직을 맡아 봉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지회는 봉고차 한 대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지회장이 되면서 군산시 등과 협의해 장애인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장애인 이동을 위해 리프트 콜택시를 도입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펼쳤다고 한다. 이런 노력으로 지금은 다섯 대의 콜택시가 운행하는 등 장애인의 이동이 많이 나아지고 지회장 활동에 보람도 생겼다고 한다.

전기수 집사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2006년부터는 군산지역 장애인 단체의 연합체인 군산시 장애인연합회 회장을 맡아 적극 활동해 오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연합회장의 역할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10여개 단체 협력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개별 단체 간의 갈등이나 서로의 문제를 우선하는 경우 등도 있어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설득적 자세로 단체간의 화합을 유도하기 위해 힘썼다.

최근 그는 장애인 주차 등 단속과 건물 신축 등에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등을 관리감독하고 있으며 장애인들이 맘 놓고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군산시 장애인 체육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국비와 도비 등의 재원 마련이 쉽지 않지만 비장애인이 마음껏 생활체육을 펼칠 수 있는 장이 있는 것처럼 장애인들도 마음껏 자신이 가진 체육의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한 가지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20여 일 간 군산시 산악연맹 주최로 열린 장애인과 함께 하는 희망원정대원으르 히말랴야 칼라파타르(해발 5545m)를 등정한 것이다. 당시 등정에는 장애인 5명이 참여했는데 하반신 마비의 지체 장애인인 그의 등정은 단연 뉴스꺼리 였다.

▲ 전기수 집사는 5월 장애인원정대원이 되어 히말라야 등반에 성공했다. 광야와 같은 등정기간 그는 하나님을 더 높은 곳에서 만나는 경험을 했다.

“처음에는 보통 산을 오를 때보다 대 여섯 배 힘들 것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10배 이상 힘들었고 너무도 힘들어 말을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광야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았지만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아내와 성도들을 생각하게 됐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됐다고 한다.

전 집사의 동반자로 함께 살아온 박순남 집사는 “되돌아보면 모든 과정이 힘들었지만 하나님이 나와 우리 가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되는 것 같다”는 말로 장애 이후 삶을 회고했다. 그의 고백 속에서 힘든 삶을 견디며 이겨온 신앙인의 자세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