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 순례자의 섬을 가다

바다 맞닿은 신안의 산티아고 순례길
문준경 전도사 발자취 따라 힐링 로드
탁 트인 바다 바라보며 영적 쉼 누려

2020-04-08     박종언 기자

▲ 전남 신안군에 12사도 순례길이 조성됐다. 사진은 대기점항에 위치한 첫번째 예배당 베드로의 집.
최근 전남 신안군 병풍도 인근의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등 노둣길로 연결된 4개 섬에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작은 예배당이 세워졌다. 12개의 예배당을 순례하는 길은 ‘12사도 순례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비유된다. 특히 이 순례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순교를 선택했던 문준경 전도사가 걸었던 길이기에 성결인들에게는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순례길의 시작, 대기점항
목포 송공항에서 70여 분 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대기점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하얀 건물과 파란 지붕으로 세워진 예배당이 반긴다. 바로 12사도 순례길의 첫 번째 예배당 ‘베드로의 집’이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 그의 이름을 딴 예배당답게 넉넉함으로 순례객들을 맞아준다. 베드로의 집 쪽문을 열고 잠시 기도 후 작은 종을 치는 것으로 12km의 순례길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베드로의 집을 뒤로 하고 기나긴 방파제를 지나면 두 번째 예배당 ‘안드레아의 집’을 만날 수 있다. 안드레아의 집은 병풍도와 대기점도를 연결한 노둣길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입구에 위치해 있다. 흰 외벽에 짙은 청옥빛의 둥근 지붕, 첨탑에 하얀 고양이 두 마리를 얹은 모양이 독특하다.

이후 논길을 지나 얕은 숲을 걷다 보면 숲 중간에 위치한 세 번째 예배당 ‘야고보의 집’이 보인다. ‘그리움의 집’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야고보의 집은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과 양쪽에서 가지런히 지붕을 바치고 선 나무기둥이 특징이다. 짧은 산길이지만 오르는 동안 세상에서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잠시의 쉼을 누릴 수 있는 작은 통나무 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네 번째 예배당 ‘요한의 집’은 경주의 첨성대를 닮았다. 건물 안팎에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는 작가의 바람이 타일아트로 채워져 있다. 세로로 만들어진 창 너머로 소박한 들판을 보며 소소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대기점도 남측에 위치한 다섯 번째 예배당 ‘필립의 집’은 프랑스 남부 건축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인근 바닷가에서 가져 온 갯돌로 벽돌 사이를 메우고, 주민이 사용하던 절구통으로 지붕을 마감했다고 한다. 필립의 집 앞에서 바닷가를 바라보며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의 감격도 맛볼 수 있다.

▲ 두번째 안드레아의 집
문준경 전도사의 노둣길을 건너다
필립의 집에서 여섯 번째 예배당 ‘바르톨로메오의 집’에 가기 위해서는 대기점도에서 소기점도로 연결된 노둣길을 건너야 한다. 과거 문준경 전도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직접 걸었던 그 길이다.

소기점도에서 만나는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호수 한 가운데 세워졌다. 가까이 가거나 직접 예배당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예배당을 보는 것 만으로도 미묘한 감정을 선물한다. 호수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바르톨로메오의 집. 쉽게 갈 수 없어서 아쉬움이 더한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주민들이 인정하는 12사도 순례길의 백미이다. 이후 만나는 일곱 번째 예배당 ‘토마스의 집’은 새하얀 회벽에 비대칭 창문이 특징이다. 정문을 장식한 푸른 안료는 신비감을 더하기 위해 모로코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 세번째 야고보의 집
다양한 형태의 예배당 눈길
이후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연결하는 노둣길을 건너면 중간에 여덟 번째 예배당 ‘마테오의 집’을 만날 수 있다. 물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일부가 잠기는 마테오의 집은 러시아 정교회를 닮았다. 소악도 둑방에 위치한 아홉 번째 예배당 ‘작은 야고보의 집’은 유럽의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어부의 기도소’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이후 어구와 쓰레기로 덮여 있던 장소에 새롭게 자리를 잡은 열 번째 예배당 ‘유다 타대오의 집’, 진섬 바닷가를 배경으로 홀로 서 있는 열한번째 예배당 ‘시몬의 집’, 대나무 숲을 지나 작은 모래사장을 건너야 만날 수 있는 ‘가룟 유다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12km의 순례길은 마치게 된다.

▲ 다섯번째 필립의 집
림의 미학·묵상의 길
총 12km의 순례길은 도보로 약 4시간이 걸린다. 이른 아침 배로 대기점도에 들어와 오후에 소악도에서 배를 타고 나가면 빡빡해도 당일치기로 방문이 가능하다. 그러나 12사도 순례길의 진짜 묘미는 느림이다. 천천히 대기점도에서 소기점도, 소악도와 진섬 등을 천천히 걸으며 이 길을 먼저 걸어가신 문준경 전도사의 발자취를 묵상하는 것도 나름의 기쁨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차를 가져가기 보다 천천히 걸으면서 돌아볼 것을 추천한다. 시간 때만 잘 맞추면 내가 걸었던 노둣길이 물 때에 맞춰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모세의 기적도 경험해 볼 수 있다. 아직 주변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편의점 하나 없는 섬이지만 불편한 것도 나름의 매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변 인프라·순례길 설명은 아쉬워
주변 인프라와 안내시설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순례길 곳곳은 공사가 계속되고 있고 제대로 된 안내시설도 없어 대기점도가 아닌 소악도에서부터 거꾸로 순례길을 걷는 시행착오도 겪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일부 길은 물때가 맞아야 건널 수 있는데 자칫 시간을 잘못 맞추면 물에 빠질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안전수칙 등의 설명도 필요하다. 일부 방문객들은 숙박시설이 없어 차박(차로 야영을 하는 숙박)이나 예배당에서 숙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2사도 순례길이 본래의 목적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와 주변 교회, 관광객들의 협력이 절실한 이유다.

▲ 여덟번째 마태오의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