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오늘 내가 선 곳의 이름은

(출 17:1~7, 15~16)

2018-07-18     조대은 목사(신곡교회)

진짜 향나무와 가짜 향나무의 차이는 언제 드러날까요?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향나무가 도끼에 찍히는 순간 나타납니다. 진짜 향나무는 도끼에 찍히면 찍힐수록 향기가 더욱 진동하는데, 가짜 향나무는 도끼에 찍히면 찍힐수록 도끼날만 상하게 할 뿐입니다. 

겉모습은 똑같이 보일 수 있지만, 도끼에 찍힘으로써 비로소 그 진위가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자인가?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자인가, 아닌가는 평소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직 결정적인 때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 건강과 재물, 생각과 뜻이 깨어지고 떨어지고 빼앗기고 부서지고 찍혀 나가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한다면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그 결정적인 때를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에 믿음이 가장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운 순간에 비 신앙적인 길을 걷는다면 그 사람은 참된 믿음의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프랑스가 낳은 수도사 샤롤르 드 푸코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처럼 결정적인 위기일 때 비 신앙적으로 처신하는 이유’로 첫 번째. 위기의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이고, 두 번째 하나님보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더 크게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어려운 순간에 나를 바라본들 절망밖에 더 있겠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르비딤은 안식처 또는 원기회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이곳에 큰 기대를 하고 장막을 치고 마실 물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물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을 것입니다.

인생길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시련 없는 삶을 꿈꾸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삶의 여러 가지 문제의 핵심은 시련의 유무가 아닙니다. 진정한 문제는 그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문제 앞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시련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삶을 저주하고 원망하며 좌절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시련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정반대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비딤에서 물이 없는 시련을 당할 때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저들은 역경과 시련이 훈련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장 2~3절 말씀을 보면 광야생활 자체가 하나님의 시험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련의 의미를 깨닫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해야 하나님의 축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서있는 그 자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만일 내가 ‘맛사와 므리바’ 그 자리에 머물러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를 불평과 원망으로 누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요?

이 시간 우리가 서있는 자리의 이름이 바뀌길 원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로 ‘여호와 닛시’의 이름처럼 승리와 기적의 자리로 만들기로 결정하는 영적회복과 신앙의 결단이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