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마 16:16

2009-02-07     전현석 목사(동부교회)

오늘날 선교의 가장 큰 이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타 종교와의 만남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거치는 돌(Stumbling Stone)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하신 이름이 타종교에서는 때론 이해되지 못하면서 배척을 당하는 이름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가지고 있는 속성 때문에 때때로 문화 속에서 갈등과 대립을 야기시켰지만 여전히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문화 위에 그리스도
복음이 가지는 속성은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 or Not)라는 삶의 행동 양식을 요구하기에 문화 속에서 함께 하는 데는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기독교 역사 속에서 복음이 복음 되는 행동을 가져오지 못하고 오히려 힘이나 억압으로 타 문화 속에서 나타나게 되었고, 이것은 타 문화의 지배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 한 쪽에는 복음이, 한 쪽에는 칼이 들려지게 되었고, 복음이 복음 되게 하기위한 ‘시간과 인내’를 저버리고, 조급하게 변화와 변혁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복음이 문화 속에 전파될 수 있는 토양 자체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양상은 오늘 교회 안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큰 교회라고 하면서도 지역사회를 무시하고 공격적으로 전도하거나 선교하면서 그 지역사회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거나, 약한 이웃과 교회도 무시한 채, 믿음만능이라는 무례함으로 규범과 질서 그리고 섬김을 소홀히 하는 교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문화 안에 그리스도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능력과 신비는 불행하게도 르네상스와 실용주의에 눈을 돌리면서 이성과 합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세계관에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저기서 메카니즘화 되고, 목말라 하면서 영혼의 신경증과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돈과 허무주의의 후기 현대주의는 복음의 세속성과 혼합성을 낳게 하였으며, 복음이 타종교와의 대화를 통하여서 복음이 가지고 있는 ‘신비와 능력’을 상실한 채 종교 안의 한 종교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원시종교의 부흥, 뉴에이지 운동, 혼합종교와 이단종교들의 활성화 등은 제도화되고 타락화 되어 세속화 되어가는 기독교에 반발하여, 인간의 목마름을 대치하는 종교들의 모습입니다. 

문화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
복음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요 관계의 요소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같은 맥락에서 찾게 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긴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복음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합니다. 복음 전파의 가장 우선순위는 “타 문화를 먼저 배우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접촉점이 생기게 되고 복음이 타 문화 속에서 커뮤니케이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문화와의 접촉이나 만남의 훈련에 그리 많은 시간의 경험이 없었습니다. 16세기, 19세기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영국과 미국 선교 속에서 좋은 모습들도 많았지만 문화 속에서의 오만과 무례함이 많았기에 복음이 ‘양키 종교’로 오해를 받게 되고 배척을 받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지금 이러한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중에 타 문화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시간과 인내로 복음이 복음 되게 하는 많은 헌신자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섬기는 자로 오셨고, 그 문화 속에서 기다림과 인내로써 삶을 보내셨고, 그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은 문화 속에서 성령님이 증거하면서, 새로운 희망의 영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