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7호> 요즘의 우리나라 TV에서...
▨… 요즘의 우리나라 TV에서 시청률 38.5%의 프로그램이라면 그 프로그램의 제작자나 감독은 대박을 터뜨렸다고 기뻐할 것이다. 지난 4월 23일 밤에 방영된 생방송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는 시청률로만 보면 어느 스포츠 경기의 결승전이나 어느 드라마의 최종회 방영분보다 높은 관심을 이끌어 냈다. 향후 5년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그만큼 뜨겁다는 반증일 것이다.
▨… 북핵문제와 얽혀있는 사드배치문제, 중국의 끝이 보이지 않는 무역보복, 한미동맹과 북한제재,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긴장상황 등 토론으로 자신의 복안을 밝혀야 할 난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음에도 후보자들은 한결같이 38.5%의 시청률에 담겨있는 국민의 기대를 짓뭉개버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구동성 아니 ‘오구동성’ 입을 모았다. 토론의 수준이 떨어지고 국민의 기대에 못 미쳤다고….
▨… 혹자는 ‘트럼프의 막말’이 대통령 당선이라는 파격의 결실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막말의 잔치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실제로 인터넷과 SNS에서는 확인할 길 없는 가짜뉴스와 인신공격이 제멋대로 춤을 춘다. 욕을 해도 가려서 해야 한다는 우리 민족 고유의 범절조차도 온데간데없이…. 이런 식으로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나면 우리는 한민족이 아니라 서로가 얼굴 붉히는 원수가 되고 말 것 같다.
▨… 국민 모두가 마음으로 그리는 이상적 지도자와 선거를 통해 뽑는 지도자는 결코 일치할 수 없다는 데에 민주주의의 비극은 감추어져 있다고 정치학자 제임스 브라이스(J.Bryce)는 밝혀주었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이기는 하지만 정치지도자로서 요구되는 높은 자질을 갖춘 사람보다는 대중의 눈길을 끄는 선거운동 전문가를 당선되게 하는 요술을 부린다.
▨… 5월 9일에 시행되는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우리는 어쩌면 북한까지 포함하는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단순히 향후 5년의 집권세력을 선택하는 선거게임이 아닌 것이다. 초등학교 이하 수준의 토론으로 표를 구걸하는 후보들 중의 한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이 가혹한 현실을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유권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망하지 말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며 여기까지 이르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