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은 킹제임스 성경에만 보존되어 있는가?
독일성서공회(Deutsche Bibel Gesellschaft)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그동안 독일어권에서 가장 많이 보급되고 사랑받는 루터성경(LB) 1984년 판을 개정하여 2017년 판을 선보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성직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것이며 누구나 쉽게 자신에게 편한 언어(당시 루터는 독일어)로 읽어야 한다는 종교개혁가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린 것이라 생각한다.
성경은 이처럼 시대의 요청과 변화의 옷을 입을 줄 아는 유연함의 총체이다. 더구나 성경이라는 말의 어원인 Βι?βλι?α(비블리아)는 단순히 ‘책의 모음, 책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비블리아라는 말은 한편으로 성경(Bibel, 비벨[독어])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책을 모아둔 도서관(Bibliothek, 비블리오텍[독어])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비블리오텍이라는 도서관에는 세상의 온갖 서적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비벨이라고 불리는 성경에도 여러 시대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 사람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다양한 계시가 담겨있다.(히 1:1) 비블리아라는 말답게 성경의 원어조차도 어떤 한 언어가 아니라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고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아람어를 사용하는 동방의 제국에 알려지고 이어서 그의 아들에 관한 복음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에 전파되었다. 이런 증거들은 성경이 그의 이야기(his story)를 전하는 하나의 역사(history)라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역사를 뒤로하고 한 언어와 한 성경번역을 고집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외적으로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그렇게 편협한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문자(γρα?μμα, 그람마)는 죽이는 것이요, 영(πνευ~μα, 프뉴마)은 살리는 것이라고 했다.(고후 3:6) 2000년 전의 바울도 문자를 뛰어넘어 참된 해석을 말하고 있는데, 20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문자를 고집하는 것은 기독교 2000년 역사의 퇴보이다.
말씀보존학회(성경침례교회)에서 말씀을 보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계보에 등장하는 몇 가지 허구를 지적하려고 한다. 먼저 성경원문연구에 대한 오해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성경의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소위 고전이라고 불리는 고대의 문서들은 다 원본이 보존되어 있지 않다.
고대의 필기도구들은 내구성이 현저히 약했다. 원본이 없어지기 전에 손으로 원본을 베끼는 필사작업을 통해 원본을 보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필사본의 성격상 필사본끼리의 불일치도 현저하다. 그 이유는 원본을 베껴서 필사할 때 잘못 베껴 쓸 수 있고 그 잘못 필사된 것이 또 필사되면서 대량 생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문연구는 그 많은 사본 중에서 더 오래된 사본과 덜 실수한 사본을 찾는 것이 제일원칙이다.
말씀보존학회에서 신약의 원문을 보존하고 있다고 내세우는 표준원문(Textus Receptus)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표준원문이 필사를 통해 다수 사본, 비잔틴 원문 그리고 시리아 원문에 전수되었고 그것이 킹제임스(흠정역)판 성경에서 하나로 완전히 결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구상에 표준원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표준원문이라고 번역한 라틴어 Textus Receptus(TR)의 더 정확한 번역은 수용본문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1633년 보나벤투라(Bonaventura)에 의해서 출판된 그리스어 성경의 서문에서 나온 말이지 그리스어 신약성경의 원문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TR은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Erasmus)가 1516년 바젤(Basel)에서 출간한 그리스어 신약성경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에라스무스가 사용할 수 있었던 신약성경의 사본은 낮은 품질인 대다수 사본과 비잔티계열의 사본이었다.
심지어 요한계시록의 그리스어사본을 구하지 못해 라틴어 불가타(Vulgata) 성경의 요한계시록 일부를 다시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싣기도 했었다. 불가타라면 말씀보존학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했다고 배척하는 성경인데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표준본문 TR에 들어 있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런 배경을 가진 TR을 1611년 영어로 번역한 성경이 킹제임스(흠정역)성경이다.
그 후 1611년판 킹제임스성경의 여러 오류들을 보완하여 1769년 새롭게 선보인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사실 현대의 여러 새로운 번역과 킹제임스성경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그 차이도 킹제임스성경을 만들 때에 오래된 우수한 품질의 사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5500여 개나 되는 사본들이 큰 차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전해준다는 것은 기적이며 은총이다.
독일에서 발간한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성경을 축하하며 어떤 한 언어로만 번역된 성경에만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이 보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속되고 편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Sola Scriptura)에 의지하여 시작한 종교개혁자 루터가 1521년 추운 겨울 바르트부르트(Wartburg)의 한 성채에 숨어 독일인들에게 그들의 언어로된 성경을 주고자 언 손을 호호 불며 번역에 몰두하는 모습이 희미한 등잔불에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