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세상에서 이기기를 원합니다
어릴 때 형 뒤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브레이크가 고장나 전봇대에 부딪혀 이마에 피 흘리며 꼬멘 상처가 지금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형의 일그러진 모습 그리고 나의 불안한 마음, 주먹을 꼭 쥐었던 일이 기억난다.
당신은 혹시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전거를 탄 경험이 있는지? 제어장치가 없는 혹은 고장 난 속도는 사람과 그 문화와 사회를 파괴시킨다. 이 시대의 상을 보면 성장과 발전의 속도에 편승하여 절대가치를 상실한 채 불법과 불의, 부정의 가속도에 무엇이든 부딪혀 무너지는 소리만 들린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단언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절제하지 못하여 교회 안팎으로 문제 속에 살아감을 본다. 절제가 있는 즐거움은 또 다른 파괴를 막기 위한 필수다. 육신적으로 달콤함만 좇아가는 사람, 결국 마귀에게 속는 생활이며 멸망의 길을 가는 것이기에 내 감정, 내 기분에 맞지 않아도, 이해타산에 맞지 않아도 억지로 해야 할 때가 많은 것이 신앙생활이며 그중 하나가 주일을 지키는 일이다.
주일성수는 억지로라도 해야 된다. 올 한해는 억지로라도 주일을 지키며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영을 좇아 사는 성도의 생활을 권한다. 육신의 즐겁게 생활을 위주로 한다면 주일을 지킬 수가 없다. 사탄은 육신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주일날 우리를 오락의 장소로 초대한다.
교회에 나가기 싫은 마음을 주고, 핑계거리를 주고, “한 번쯤은 괜찮아 ! 아무개 집사도 주일날 놀러 가는데" 하며 꼬드긴다. 사탄은 교인이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일을 매우 싫어하고 방해하기에 우리는 별 기분이 내키지 않아도 내 기분 감정을 조절하며 세상을 향해 브레이크를 걸어 놓고 교회로 발걸음을 억지로라도 옮겨야 한다.
두 번째는 헌금생활이다. 이 부분도 때로는 억지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 대부분이 복 받기 원하는 기도를 드린다. 또 축복의 모델이 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바라는데 아브라함도 억지로 육신의 감정을 누르고 애정을 누르는 절제가 있었기에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하나님이 감탄하시면서 엄청난 축복을 주신 것이다. 감사할 수 없다할 지라도 억지로라도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사실 우리는 자동차를 구입할 때나 집을 장만할 때 한 번에 목돈을 주고 사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개 대출을 받거나, 할부로 구입하여 그것을 갚아 나간다. 혹시 나의 헌신이란 고작 할 수 있는 범위 한도 내에서만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그 생각을 넘어서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일이라 생각한다. 가끔 물질 앞에서 인색한 마음이 들어 하기 싫어진다면 그 마음은 분명 마귀가 가로막기 때문일 것이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억지로라도 해야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기도생활이다. 마틴 루터는 기도가 중노동이라 했다. 내 육신도 편한 것을 좋아한다. 한때는 새벽에 일어나기가 죽기보다 싫을 때가 있다. 그러나 육신의 기분을 맞추다 보면 새벽에 승리할 수 없다. 마귀는 아무리 똑똑해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우습게 본다. 따라서 마귀에 지지 않으려면 억지로라도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한다. TV앞에 몇 시간 대면하고 있음보다 하나님과 억지로라도 대면하는 노력이 필요할 지금이라 생각된다.
유명한 스타도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다 한 번씩 고비를 넘으며 억지로라도 그 고비를 자의 반 타의 반 넘어서니 스타가 됐다고 회고한다. 구레네 시몬도 자원이 아닌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더니 그와 그의 자손이 축복을 받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올 한해 유독 “목사님 힘들어서 교회 일 좀 쉬겠습니다”라는 상담을 많이 했다. 그러나 진정 영에 속한 사람은 세상과 자신에 새로운 브레이크를 걸어 놓고 싫어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결단이 있을 때 믿음이 자라고 축복을 받을 것이다. 세상에서 이기기를 소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