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구약단상 <23>
우리가 꿈꾸는 가정
하나님은 우리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사랑하시고 또 우리에게 주고 싶으신 것이 많으신 분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습니다. 심지어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 다섯째 날까지 하신 모든 창조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하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칠일째에는 하나님이 안식하셨다고 하시는데 이는 하나님이 사람처럼 힘이 들어서 쉬셨다는 의미보다는 그 만큼 하나님은 세상을 최선을 다해서 창조하셨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보노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 만큼 하나님은 우리 사람에게 관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관심의 대상이 되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 보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신 이유이자 인류 최초의 가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연히 가정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복입니다. 그냥 복이 아니라 최고의 복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담은 하와가 자신의 아내가 되는 사실이 얼마나 기뻤는지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단지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실 때에 아담을 창조하듯이 흙으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아담의 갈비뼈를 사용하셨다는 그 이상의 의미입니다.
이 말은 남편과 아내가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뼈’ 라고 하는 말을 반복하고 ‘살’이라고 하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하와인 아내가 아담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혈육이란 의미입니다. 그만큼 하와는 아담에게 특별한 선물이자 아담에게는 하와가 가장 ‘소중한 존재’요 ‘기쁨의 동역자’이며 ‘조력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가 여지없이 부서져 버렸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형상이 깨지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 아름다운 성품을 잃은 사람끼리 이상적인 관계가 지속될 리 없습니다. 그 관계가 여지없이 부서지고야 말았습니다.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의 관계가 이제부터 “너[하와]는 남편[아담]을 사모(히.트슈카)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리(히.마샬)”는 관계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너[하와]는 남편[아담]을 사모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사모한다(히.트슈카)는 ‘요구하다’는 말입니다. 이제부터 아내는 사랑을 받고 남편 아담을 돕는 조력자가 아닌 아담에게 주도권을 요구(히.트슈카)하는 관계로 전락했습니다.
아담 역시 하와를 ‘다스리려’ (히.마샬) 하는 관계가 형성되고야 말았습니다. 긴장이 있고 갈등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여자는 남자에게 끊임없이 주도권을 요구하고, 남자는 여자를 다스리려 하는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상호 보완적이 아닌 피차간에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셨던 가정의 모습은 아내와 남편의 마음과 행동과 삶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가정입니다. 우리 가정들이 이러한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믿는 가정에 온유함과 사랑과 기쁨, 그리고 감사가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가정을 꿈꾸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