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구약단상 <13>

왠지 모르지만

2016-07-20     이성훈 목사(임마누엘교회)

이성훈 목사
목회자로서 생활을 하다 보니 학교에 근무할 때보다 가정에서 자녀들과 보내는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에 들어갈 때마다 자녀들로부터 대환영을 받습니다. 엘리베이터 소리만 나면 뛰어나와서 문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무척 행복합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저의 자녀들은 저의 능력의 유무를 떠나 무조건 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회도 그렇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참 행복한 목회자입니다.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이유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중의 한 가지는 착각일런지는 몰라도 제가 시무하는 교회 성도들로부터 분에 넘치도록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목회가 참 감사하고 즐겁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쓸데없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성도들이 나를 ‘이성훈’ 그 자체로 좋아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입니다. 목회자라는 이유가 아닌, 또한 목회자의 능력 유무를 떠나 “한 없이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성훈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냥 좋아” 하는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하나님도 우리에게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특별한 사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에녹입니다. 에녹에 관한 정보는 창세기 5장 24절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히.히트할레크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하는 구절 뿐입니다.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들려 올라갔습니다. 선지자 엘리야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그가 하나님과 동행(히.히트할레크흐) 했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동행하다’(히. 히트할레크흐)는 동사가 소위 히브리어의 7가지 동사 유형 가운데 ‘히트파엘’ 동사라고 일컬어지는 유형의 동사로 되어 있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일반적으로 ‘칼’(Qal) 동사를 사용해서도 그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는 표현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히트파엘이라고 하는 동사의 유형을 굳이 사용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에녹과 하나님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그가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에녹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하나님은 그러한 에녹을 무척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70인 역본에서는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헬. 유에레스테오)로 번역하였습니다.

히브리서 역시 70인 역본처럼 “…그는(에녹은)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헬.유아레스테오)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라는 말씀을 통해 에녹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저는 에녹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사실이 저에게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럽지 않습니다. 정작 부러운 것은 그는 하나님을 온 맘을 다해 사랑하였고 그러한 그를 하나님이 아끼셨다는 사실입니다. 한없이 부럽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이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었다는 것이 무척 부럽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이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 주셔서가 아니라 그냥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 말과 행동 하나 하나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흔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분과 정말 친밀하였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 때문에’가 아닌 ‘왠지 모르지만’ 무조건 사랑할 수만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