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듣는다
참된 원로에 목마른 시대
여기에는 숨어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 욕망에 흔들리는 군중과 국회를 크게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국가의 중대사가 발생될 때마다 나라 살림을 맡아 참신하고 정직하게 일을 맡아 보던 공로가 있는 원로 10인 위원들을 찾아 의논하여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경험은 지식의 원천이라는 데 근거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베네치아국의 근국치정의 정신을 조금쯤은 귀감 삼아 전·후임 관계가 원만하여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목말라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분부하심을 어기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내던진 채, 인간의 수단과 방법에만 의존하는 순리 아닌 역리적 방향으로 길을 찾는 교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부 전임자 원로가 은퇴한 후에도 시무하던 교회에 계속 미련을 끊지 못하고 쓸데없는 간섭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과 내통하여 후임자의 목회에 장단, 시비를 논하고 후임자가 소신껏 능력 발휘를 못하도록 좌절시키는 사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원로들은 앞에 달려간 계주 선수와 같이 일단 바통을 다음 선수에게 넘겨준 뒤에는 뛰는 선수에게 맡기고 지나친 간섭을 하지 말고 자기 자리에 돌아가야 합니다. 또 후임자들은 전임자가 자신의 목회 영역을 간섭하므로 자신의 목회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의구심이나 선입관 또는 피해의식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베네치아 일선에서 일하는 위정자들과 같은 정신으로 원로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해서 신자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게 하였으면 합니다.
전임자는 스스로 자기의 공로를 자창함으로 십자가의 공로를 역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후임자는 전임자의 있는 공로를 무시하거나 묵살시키는 일을 해서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가 시작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줄 압니다.
한국교회 전·후임자들이여, 우리들은 세상 윤리나 법이나 제도나 도덕 수준에서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높은 사랑과 진리의 가르침을 받고 또 가르치는 랍비들입니다.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우리 교회 원로 목사님은 왜 그러실까?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은 왜 그러실까?’하는 소리 없는 불평에 싸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만인이 우러러 보는 목사상을 잃지 말아야 됩니다.
끝으로 미국의 예를 들어 봅니다. 미국이 짤막한 역사 속에서 오늘과 같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군사, 경제, 과학, 문학, 예술 각 방면으로 제일 강대국으로 세계 질서를 유지해 나아가는 국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인들은 물러난 대통령을 매일 매일 자기의 손으로 만지고, 보고, 부르고, 주머니 속에 넣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달러)을 비롯해서 역대 대통령을 거의 다 그렇게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대국이 된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는 줄 믿습니다. 서울이나 지방 할 것 없이 교회가 교회로서 자기 자리에 서는 교회들은 원로 목사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교회입니다. 물론 사람인지라 삼, 사십년 긴 세월을 지나노라면 실수도 있고, 부족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부정적 안목에서 흠을 잡지 말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전임자들의 수고와 땀과 눈물을 기리고 섬길 줄 아는 교회가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인생 황혼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조그만 바람이며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