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칼럼>신앙인의 겸손과 교만
겸손과 교만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의 말입니다. 사전에는 겸손을 ‘남 앞에서 제 몸을 낮춤’으로 정의하였고 교만은 ‘겸손하지 않고 뽐내어 방자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겸손과 교만은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단계, 두 번째는 말로 나타내는 단계, 그리고 세 번째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겸손과 교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출생부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그의 한 평생은 겸손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오른편 뺨을 치는 사람이 있으면 왼편도 돌려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벗어주라”(마 5장 39~40)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주시는 겸손함도 보여주셨습니다.(요 13장 4~5절)
요즘 일부 대학에서 스승의 날에 교수님들이 학생들의 발을 씻어준다는 말은 대단히 고무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은 사람의 신체 중 최하위의 부분으로서, 주인의 무거운 체중을 짊어지고 험난한 산꼭대기, 깊은 골짜기까지도 마다 않고 가장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반해,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더러움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씻는 순서도 맨 먼저 손을 씻고, 얼굴, 몸, 마지막으로 발을 씻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잘 한 일이 있어도, 남이 알아서 칭찬을 해주어야지, 자화자찬하면 그 잘한 일이 희석되어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잘난 멋에 사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로 타일러도 자기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많이 배워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있지만, 차라리 못 배워 ‘모르는 것이 약’이 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그 자체가 교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특히 한국인에게 해당하는 말로서 그중에서도 믿음 생활하는 교회에서 연말연시에 새로운 직분을 맡긴 때 당사자는 한사코 거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겸손이 아닌 교만이 아닐까 싶습니다.
높은 사람에게 손을 비비면 비굴하게 아부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약자를 무시하면 자기가 아무리 강자라도 똑같이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파트나 사무실 승강기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한 마디 정도 인사말을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쑥스럽다면 간단히 고개 숙여 눈웃음만 보내도 상대방은 기분이 훨씬 더 좋아질 것입니다.
인간 처세의 비결 중 하나는 자기 과시나 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 누구 앞에서나 보다 겸손한 자세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