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교회를 남달리 사랑한 도한기 장로 ④
교단, 교회를 위해 헌신
도한기 장로는 몸은 야윈 편이지만 부인 조애순 권사의 세심한 내조로 건강을 잘 유지하며 교회와 사업, 지역사회와 총회, 총회기관 등 각 분야에서 소임을 원만히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우철 목사가 갑자기 이리삼광교회로 부임한다는 발표를 하여 교회가 크게 부흥되던 중에 성도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교회가 다소 동요했지만 도 장로가 신앙으로 잘 극복하고 수습해 교회는 안정을 찾았다. 이우철 목사의 후임으로 임기택 목사가 부임했다. 임 목사는 학자풍으로 정적이고 차분한 목회로 교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임 목사가 제천중앙성결교회로 부임하고 지성천 목사가 장항동부교회에서 1984년 11월 13일에 부임하였다. 이때 안동교회의 문예부흥이 시작되었다. 도 장로는 지 목사의 목회사역을 충실히 지원해줬다. 지 목사가 부임한 후 안동성결교선교위원회를 조직하여 선교위원장에 도한기 장로를 세웠다. 도 장로는 선교회위원장으로서 안동성결교회가 마음껏 복음사역의 지평을 넓혀가도록 지원했다.
지 목사는 안동복음화에 정열이 있었기에 교파를 초월하여 안동교회지역교회의 연합 사업과 행사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했다. 지 목사는 안동횃불회 회장을 맡아 농어촌목회자를 모아 지속적인 교육행사를 가졌다. 목회자의 지속적인 교육 강의는 연중 2학기로 나눴는데, 1학기는 3월부터 6월까지, 2학기는 9월부터 11월까지로 진행했다.
초청된 강사는 안동장로교회의 김기수 목사를 비롯하여 이동원 이용남 나겸일 박조준 소강석 장자천 목사 등 저명한 목회자들과 이원설 한영태 신성종 성기호 등 신학자들과 김소영 등 기독교교육 전문가와 다일공동체의 최일도 목사, 대학생선교회 총재 김준곤 목사, 황수관 박사 등 저명 인사들이었다.
또한 안동지역 목회자 아버지학교를 열어 목회자들의 가정을 이름답게 하였고 강문호 목사의 성막 세미나에 수백 명이 참여하는 등 농촌 목회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또한 안동교회선교회가 뒷받침이 되어 지 목사가 안동경찰서 경목실장으로서 교회가 경찰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찰관을 비롯하여 전투경찰관, 의무경찰, 방범대원 유치인의 전도와 상담에 힘을 기울이며 복음을 전했다.
그 밖에 대구검찰청안동지청 청소년선도위원, 안동교도소 종교위원, 갱생보호위원회 보호관찰위원 등의 사역을 안동교회선교회가 뒷받침했다.
안동교회는 군위, 의성, 안동, 영주 감찰회, 경북지방회, 영남지역총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본부, 나아가 안동지역 기독교연합회와의 관계를 맺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교회사역의 범위를 넓혀 모든 교인들이 교회 내의 일과 지방회, 총회기관 등에서 받은 은사와 역량에 따라 봉사의 기회를 제공했다.
도한기 장로는 지역유지로서 지역사회의 여러 봉사기관에 참여하여 직·간접으로 복음전도에 힘썼다. 1980년 안동문화원 이사, 1983년 대한노인회 경북연합회부회장, 1984년 대구지방법원안동지원 가사조정위원회, 1975년 국제와이즈맨 클럽회장, 1977년 국제로터리 서안동캠프회장, 1981년 국제기드온협회 안동캠프회장 2회 연임, 1985년 국제로터리 제370지구 재무국장 등 지역사회에 많은 봉사를 했다. 도한기 장로의 수상 경력으로는 1974년 교단총회장 교회건축공로 표창을 받았다. 1978년 모범상공인으로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으며 1980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상을 수상했다. 후손으로 장남 경구, 장녀 미경, 차남 성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