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호> 본지 919호의 머릿글은...
▨… 본지 919호(2013년 10월 12일자)의 머릿글은 “착한교회, 이제는 사회적 기업이다”였다. 그 글의 내용은 서울의 한 성결교회가 ‘나누미 사업단’이라는 법인을 설립하여 카페, 식당, 주차장, 교회당 대여, 청소용역 등의 수익사업과 민관협력사업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교회가 이러한 사업(?)을 펼치는 것은 교회와 지역사회 사이를 가도막고 있는 담장을 허물기 위한 시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 ‘사회적 기업’이라는, 교회의 전통적 정서에서는 조금은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는 말을 기자가 굳이 사용한 것은 이 교회의 발상과 활동이 성결교회가 지금껏 고집해왔던 교회론에 대해 과감한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시대가, 세상이 달라졌으니 교회가 이웃에게로 다가가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발상은 비성결교회적(?)이라고 할 만큼 획기적이었다.
▨… ‘나누미 사업단’이 운영하는 사업체들은 일정한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기업적 성격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수익 창출은 사업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을 전제하고 있다. 이점에서 나누미 사업단의 사업은 기업의 영역에 속해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봉사활동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 그러나 자체 수익창출이 이뤄져야 사업단의 지속적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기업적 생리를 지니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최대한의 수익창출을 목표하지 않는 기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는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최소한의 수익창출이라는 나누미 사업단의 시험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 길의 동참을 꿈꾸는 많은 교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 많은 교회들이 교회 유지를 위해 상업적 빌딩을 건축하고 임대료 수익을 창출한다. 심지어는 부동산 시세차익까지 바라보며 토지를 사들이고 있다. 나누미 사업단의 수익창출 사업이 행여라도 저들의 행태를 정당화시켜 주는 빌미를 줄까 염려된다. 요즘들어 “신은 예부터 가난한 자를 사랑하셨으며 그러므로 그토록 많은 가난한 자를 만드셨다”는 갈브레이트(불확실성의 시대)의 말이 비아냥으로 들리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