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엠지(DMZ) 평화공원의 경우
남북관계가 풀려가고 있는 게 다행이고 고맙다. 정치인들이야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고도의 셈법을 갖고 따지겠지만, 그런 계산으로도 해빙이 서로 이득이 되는 모양이니 감사하다.
남북관계와 연관된 민간차원의 여러 분야에서는 남북관계의 평화적 틀이 아주 중요하다. 유엔이나 인도적인 국제 활동에서 남북관계는 이미 한반도나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긴 우리나라의 일부에서나 민족 내부적인 사건으로 단순하게 인식하고 있지, 6.25전쟁 자체가 국제적인 역사 흐름의 질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북관계가 평화적인 방향으로 가는 데 필수적인 것이 충돌을 방지하고 긴장을 완충할 수 있는 장치들이다. 큰 틀로 보면 둘이다. 하나는 민간 협력과 교류인데 특히 경제적 교역이 그 중심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적인 관심사가 제도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예컨대 적절한 방식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확대하는 것이나 유엔의 다국적 평화군 같은 것이 그런 역할을 한다.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은 이런 점에서 아주 중요한 완충장치로 생각되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뒤 그래도 개성공단은 유지될 것으로 여겼는데 정치적인 상황과 논리에 밀려 심각한 좌초 위기까지 겪었다. 가까스로 좌초는 면하고 다시 가동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군사적 충돌이나 정치적 헤게모니 논리로는 한반도 문제가 풀릴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남쪽에서 정권의 유지를 위해 남북 대치 상황을 이용해 먹었던 시절이 지났다면, 북쪽에서도 벼랑 끝 대치 전술로 이익을 챙기는 것은 옛 말이 되어버렸다. 중국의 굴기와 일본의 제국주의적 우경화로 인해 동아시아의 큰 틀이 바뀌고 있는데 남북의 지도자들은 중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한반도의 번영과 민족의 생존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평화’, 이 단어는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데 필수적인 단어라 할 것이다. 이 단어의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한다면 기독교가 할 말이 많다.
성경 전체의 흐름에서 샬롬 곧 하나님의 평화는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봐도 그렇다. 기독교 신앙이 인류 역사에 또는 교회가 존재하는 지역의 삶을 위해 공헌한 때는 늘 평화의 삶을 일구었던 때였다. 반면 교회가 신앙의 이름으로 삶과 역사를 파괴했던 때는 언제나 갈등과 전쟁을 교리적인 논리로 왜곡했을 때였다.
평화와 연관된 아주 현실적인 주제가 ‘디엠지(DMZ) 평화공원’ 얘기다. 이 발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 정치권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지만 기독교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해오던 얘기다. 국제적인 인지와 협력과 동참을 끌어들여 디엠지 지역을 평화공원으로 만든다면 이는 세계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인 한반도, 그 가운데서도 동아시아 긴장의 초점이랄 수도 있는 지역이 디엠지다.
기독교와 연관하여 이런 구상은 어떨까. 올해 10월에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에 대한 논란이 교계에서 뜨겁다. 그런데 이 문제를 창의적 발상으로 풀어보자.
내년에는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총회가 한국에서 열린다. 해를 이어서 진보와 보수의 세계적인 연합체 총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것이다. 이 두 국제기구가 협력하여 디엠지 평화공원을 구상하면 어떨까? 보수든 진보든 평화를 반대하지는 않을 테다. 보수든 진보든 기독교 신앙이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화홰와 용서를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일구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신앙인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부산총회는 열린다. 세계복음주의연맹 임원진도 참가하기로 했다고 한다. 두 국제기구의 임원진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의제 가운데 디엠지 평화공원을 넣으면 된다. 총회 후 발표문에 우선은 총론적인 선언을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는, 특히 디엠지 문제는 기독교 신앙이 오늘날 세계의 갈등상황에서 어떤 영향력을 갖느냐를 시험하는 마당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