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의 생생 Talk <10> 엘리야
로뎀나무 아래서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왕상 19:4, 5)
누군가 날 어루만지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잠시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누군가 나를 쓰다듬는 느낌에 놀라 다시 눈을 떴다. 자꾸 흐트러지는 정신을 집중하자 이번에는 목소리까지 들렸다. 그것은 분명 일어나서 음식을 먹으라는 소리였다. 그제야 왜 내가 여기 누워있었는지 생각이 났다.
꼬박 하루 동안 밥은 고사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광야를 걸어 왔던 거였다. 바알의 선지자들을 잡아 죽인 일로 화가 단단히 난 이세벨이 살기등등해 날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길로 줄행랑을 쳤다. 그녀가 얼마나 잔인하고 표독스러운지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할 만큼 탈진한 내 눈에 구릉 위에 서 있는 로뎀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기어가다시피 겨우 나무 아래에 이른 난 그대로 쓰러졌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 왔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대로 삶이 끝났으면 했다.
잠시 정신을 차린 난 일어나 앉을 기력도 없이 기도를 드렸었다. “하나님!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제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더는 못합니다. 난 내 조상보다 그리 나은 사람이 못됩니다.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십시오.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내고 싶습니다.” 그 다음 무슨 기도를 드렸는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일어나 보니 내 앞에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이 놓여있었다. 탈진의 고통 뒤에 가려져 있던 허기가 음식을 보자 갑자기 이성을 잃어버렸다. 허겁지겁 떡을 입에 우겨 넣고는 물 한 병을 한 순간에 들이켰다. 배속에 음식이 들어가자 그제야 내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알의 선지자들 앞에서 내게 응답하셔서 제단에 불을 내리시고 도랑의 물까지 모두 사르신 그 분, 내 기도를 들으셔서 가뭄 끝에 큰 비를 내리시고 이스라엘의 왕 아합을 놀라게 하신 그 분께서 천사를 통해 날 쓰다듬으셨던 것이다. 죽기를 구하는 내게 오히려 음식과 물을 주셔서 기력을 회복하게 하신 것이다.
문득 지금의 내 모습을 혹시라도 누가 본다면 날 비웃을 것 같다는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한 나라의 왕을 놀라게 한 선지자가 자신의 생명을 잃는 것이 두려워 이렇게까지 찌그러진 모습으로 죽기를 구했다는 것이 말이다. 사명은 계속되는데 현실을 도피한 채 나무 그늘에 널브러져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 생각 끝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선지자도 사람일 뿐이지 않은가. 난 그저 그분의 도구일 뿐…. 강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다. 전능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다. 창조주의 권능으로 세상을 두렵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피곤치 않으신 분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다. 로뎀나무 아래서 그 분은 내게 그 사실을 다시 기억나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