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의 생생 Talk 4 - 이삭
상처와 치유의 이중주
네게브의 석양은 그 땅의 황량함에 잠시나마 신비한 아름다움을 덧칠한다. 호젓한 들판을 걸으며 마치 한 폭의 유화처럼 저녁놀에 붉게 물이 들어가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석양은 하루의 빛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마지막 자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황혼의 들판을 홀로 거닐며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속에서 자신을 열어 보이시는 하나님을 찾아 묵상하기 시작한 것은 수년 전 내 어머니 사라가 죽고 난 후였다.
내 탄생이, 아니 내 존재가 어머니에겐 웃음이었다.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지만 나에 대한 내 어머니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은 그 위대함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어린 나와 내가 받을 기업을 보호하려던 어머니는 내 이복형인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를 한 점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고 내쫓는 악역까지 서슴지 않으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머니는 오직 나를 걱정하며 눈을 감으셨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남겨두고 죽음의 문을 넘어 떠났을 때, 내가 느꼈을 아픔과 외로움과 좌절을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아버지조차도 어머니의 죽음이 내게 남겨준 상처가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이었는지 짐작하지 못하셨다. 내가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결혼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음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어머니를 여의고 난 후, 웃음도 잃었고 말도 잃었다. 희망도 잃었고, 삶의 의미도 잃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해가 뉘엿거리는 들판을 홀로 배회하는 습관이 생겼다.
해 지는 들판을 거닐며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지는 저녁의 햇빛이 땅을 어루만지는 하나님의 손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그 빛을 받아보겠다고 옷까지 벗어 던진 채 미친 듯이 들판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메마른 땅을 하염없이 눈물로 적시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목놓아 부른 날도 많았다.
바위틈에 핀 한낱 이름 없는 들꽃조차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들판에서 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 날, 황홀한 석양을 등에 받으며 멀리서 다가오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너울로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눈이 부신 아름다움을 다 가릴 수 없었던 리브가, 그녀가 내게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곤 어느새 내 마음 속으로 그녀가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어둠 속에 그냥 버려졌던 내 마음에 드디어 그녀가 사랑의 빛으로 들어온 것이다.
리브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사랑의 상처는 사랑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이 내게 상처를 남기지만 내 상처를 치유하는 것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무엇보다 그러한 상처와 치유의 이중주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의 마음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총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