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해빙의 계절에 바라는 것들

2013-02-20     이명재 목사(덕천교회)

오늘(2월 16일) 볼일이 있어 시내에 다녀왔습니다. 시 외곽에서 농촌 목회를 하는 제가 시내를 다녀 올 때면 무슨 볼일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희 교회 학생회 아이들이 활동하는 한 청소년 찬양동아리에서 오늘 발표회를 갖습니다. 아이들의 열정도 어른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임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작은 희망을 그려봅니다.

오늘 저녁 6시에 발표회를 시작하는데, 모이기는 오전 9시부터랍니다. 마지막 연습을 하기 때문이래요. 그들에게 뭔가 도울 일을 생각하다가 간식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빵과 우유를 사서 연습 중인 아이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작은 것에 기뻐하는 아이들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김천을 둘러싸고 있는 황악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황악산은 높이가 1111m라고 합니다. 아직도 산언저리엔 하얀 눈이 제법 두텁게 쌓여 있습니다. 응달엔 그 선명도가 더 높은 것을 보니 저 산에도 햇볕의 닿는 정도가 제각각인 것 같습니다.

잠시 지금 우리의 현실에 생각을 돌립니다. 나라도 그렇고 이 사회도 그렇습니다. 양보 없는 주장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투쟁과 타도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튀어 나오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 교계도 다르지 않고 우리 교단도 비슷합니다. 깊이 있는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날짜까지 확정된 WCC 부산총회를 취소하라고 외치고 있고, 교단 내에서는 서로 개혁을 외치며 철로처럼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곳을 향하여 팽팽히 치달리고 있습니다.

해빙의 계절은 다가오는데, 우리의 마음은 더 얼어가고 있습니다. 지방회가 열리고 있는 즈음이지만 양보와 타협의 목소리보다는 편 가르기의 목청이 더 높은 듯합니다. 누구에게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 현상입니다. 기독교를 한 단어로 규정한다면 ‘사랑'이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압니다. 하지만 이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다른 문제 같습니다. 여기서 기독교의 대 사회적 신뢰 문제가 운위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상황이 지금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서기관 등 바리새인들이 돌 던지기(정죄)에 능했던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진퇴양난에 빠뜨리려 할 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어른으로부터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일어나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이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렇다고 설명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최소한의 양심을 지니고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투쟁과 타도는 무죄한 사람에게서 쉽게 나올 수 있는 행동입니다. 반면 양보와 타협은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나의 판단과 행동이 아무리 옳더라도 사람의 선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직간접적 영향을 끼칠 때는 더 신중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유 없는 무덤이 없듯이 지금 우리 교단에 횡행하는 주의 주장에는 논리성과 정당성 그리고 합리성을 나름대로 갖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빠져 있을 때, 그 논리성과 정당성 합리성은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마음을 재음미할 때입니다.

세상에서도 양보와 타협을 미덕으로 이야기합니다. 과거 불의한 사회에선 그것을 굴종과 회절로 치부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발전한 21세기 민주주의 국가는 양보와 타협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 교계는 이 점에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죽이고 이루는 개혁은 19세기의 전근대적 개혁 방식입니다. 21세기의 개혁은 다 같은 사는 방향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계 지도자들은 이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따지고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합니다. 버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귀하고 필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 사랑을 되새깁니다. 들었던 돌을 내려놓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기 때문에.

해빙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김천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황악산 잔설도 오래지 않아 다 녹아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내 마음 속의 눈부터 녹이면서 포근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봐야겠습니다. 해빙의 계절에 생각나는 것들, 교계가 말씀으로 회복되고 우리 교단이 상생의 길로 접어들기를 기도합니다. 들었던 정죄의 돌을 예수님 앞에 내려 놓고 다 같이 손잡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