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주적을 분별합시다
싸우는 군대는 자신들이 싸워야할 주적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한다. 그래야 그쪽을 향한 경계를 늦추지 않게 되고 만반의 준비를 하여 언제라도 사태가 벌어지면 적절히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대한민국 군대의 주적이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다든지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누가 우리를 해할 적인지 어느 쪽이 우리의 동맹인지 피아를 분별하지 못한 채 아군과 동맹군을 향해 총을 쏘아대는 일이 벌어진다는 뜻인데 끔찍한 일이 아닌가? 문제는 오늘날 우리 교계, 우리 교단 안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적들은 다양한 전략과 수단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향해 공격을 하는데 정작 우리 자신들은 서로를 향해 총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정치적인 파워게임이 그 원인이 됐든지 정의나 개혁이라는 이유가 됐든지 간에 주 앞에 커다란 잘못임을 알아야한다.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는지 다윗의 삶을 통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다윗은 엘리압과 싸우지 아니했다. 다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독하는 골리앗에 분개하여 싸우고자 나설 때 다윗의 맏형 엘리압이 다윗을 욕하며 심한 말로 저지한다. 이때 다윗이 만일 엘리압과 싸웠다면 오늘날 다윗의 신화는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윗이 싸울 상대는 블레셋 군대의 골리앗이지 자신을 비난하는 엘리압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교회나 교단에서 주의 일을 하다보면 안팎으로 많은 비난과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무고하게 그럴 수도 있고 혹은 빌미를 제공하거나 실수한 까닭에 그럴 수 있다. 그럴 때 그들과 싸우는 일은 지혜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 왕과 싸우지 아니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얼마나 골몰했는지는 우리가 다 잘 안다. 정예군대를 동원해서 나라 안을 뒤지고 정보가 올라오면 즉각 출동해서 다윗을 잡으려 했다. 급기야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망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위험에 몰려도 다윗은 사울 왕과 싸우지 아니했다. 사실 사울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왕이다. 더군다나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을 죽이려는 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이려 하지 않았고 옷자락을 베는 것조차 괴로워했다. 자신이 현재 맞서 싸우고 있는 목사나 장로가 있다면 이제 싸움을 그쳐야한다. 그를 향하여 손을 들어 대적하지 않는 것이 선하고 귀하다. 하나님께서 버리신 사람이라 여겨질지라도 그리함이 옳다. 악은 악인에게서 나니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이 주님이 가신 길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지 아니했다. 사무엘상 29장에 보면 망명한 다윗이 블레셋과 한패가 되어 사울의 지도하에 있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고자 했다. 진심이었는지 처세였는지는 모르지만 아기스와 함께 싸움에 나섰다. 물론 하나님은 다윗이 이렇게 이스라엘군대와 싸우는 것을 막으셨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다윗이 어찌 블레셋과 힘을 합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군대와 싸운단 말인가?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길 뻔 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 교단 안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 교회들끼리 싸운다. 교단 안에서 세력을 이루고 싸운다. 서로 간에 소송을 벌인다. 자신도 모르게 원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교회와 싸우는 것이다. 한 성령, 한 믿음, 한 소망을 가진 주님의 몸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다. 주적이 누구인지를 잊고 있음이다.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하셨음을 기억해야한다.
창을 내려놓아야 한다. 억울할지라도 당하고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나만 옳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어찌 진실의 모든 것을 알고 규명할 수 있겠는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시시비비를 다 가려야겠다 하지 말아야 한다. 판단은 주가 하신다. 서로에게로 향한 창의 방향을 바꾸어 원수마귀 대적을 향해 돌려놓아야 한다. 우리끼리 싸우는 동안 원수의 웃음소리가 진동하는 것 같아 원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