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1474호)
‘오늘이 곧 마지막 날’로 살자
기독교인의 시간 개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종말의 때를 바라보며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시간 속에 갇혀 사는 인간에게는 주어진 시간 안에서 자신의 비전을 성취하며 살아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시간은 바로 ‘현재’라는 사실입니다. 현재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귀한 시간이며,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신앙과 인생의 질을 결정합니다.
이 주어진 시간을 두고 어떤 이는 과거에 얽매여 살아가고, 어떤 이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만을 바라보며 불안 속에서 헤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삶의 자리는 언제나 오늘이며, 지금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과거만 바라보면 우리는 멈추고, 미래만 바라보면 현실을 잃어버립니다. 결국 인간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성실히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과거가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행적과 경험 없이 오늘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우리의 현재를 형성했고, 현재는 다시 미래를 향해 이어집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과거는 결정적인 굴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은 죽었기 때문입니다. 새 사람이 된 성도에게 과거는 더 이상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특히 과거의 실패, 죄책감, 절망의 기억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힘을 잃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와 상처의 기억을 주님의 보혈로 씻어 내고, 새 생명 가운데서 미래의 소망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기독교인의 시간 개념이 종말론적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며 현재를 사는 것, 곧 ‘마지막 날이 오늘’이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포 속에서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임재를 날마다 의식하고, 심판보다 은혜를 더 깊이 느끼며 오늘을 성실히 사는 삶입니다. 의롭게, 정결하게, 바르게 사는 것이 종말론적 믿음의 실천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린다는 것은 매일을 최선으로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나누고 긍휼을 베풀며,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종말론적 삶의 구체적 모습입니다. 종말을 의식하는 성도는 두려움보다 감사와 겸손으로 살아갑니다.
혹시 과거의 잘못 때문에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짐을 속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과거에 매여 사는 것은 죄와 율법의 속박에 머무는 것이며, 사탄이 틈타서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기 가장 쉬운 자리입니다. 얽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자라지 못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과거로부터의 해방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새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담대함으로 어두운 세상과 맞서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사도 베드로도, 성 어거스틴도 모두 과거의 사슬을 끊고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당당히 일어섰습니다. 그들의 변화는 하루아침의 감정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신앙’이 만들어 낸 열매였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주신 기회입니다. 어제의 실수도, 내일의 염려도 내려놓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붙들 때 우리는 비로소 신앙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시간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서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낼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종말을 향해 올바르게 걸어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