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균 교수의 십자가 밑에서(1474호)

“하나님, 이 광야에서 무엇을 할까요?” “하필 왜 나죠? 언제 구출해주실 건가요?” 이런 질문 아닌 “누구를 만나야 할까요?” 내 것을 내려놓고 주님 만나려 노력해야

2025-11-19     하도균 교수(서울신대 전도학)

예수의 길에는 회심과 세례라는 출발점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된 길을 걷다 보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광야’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광야를 만났을 때 길을 잃었다고 느끼거나,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좌절하고 낙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순례의 여정에서 만나는 광야는 단순히 개인의 연약함이나 영적인 문제 때문에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다가와 광야를 경험하게 합니다. 광야는 어떤 곳일까요?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소리를 찾고 들어야 길을 잃지 않고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광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라는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광야에서 던지지 말아야 할 질문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광야에 들어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나예요? 하나님, 왜 내가 이 광야에서 이렇게 힘들어야 하죠?”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은 올바른 질문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 언제 구출해 주실 건가요?” 이것도 올바른 질문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 그리고 내 자신에게 던져야 할 올바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What(무엇을): 하나님, 내가 이 광야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Who(누구를): 하나님, 내가 이 광야에서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이것이 예수의 길을 걷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광야에 들어서자마자 “언제 구출해 주실 건데요? 주여, 언제까지입니까?”라고만 한다면 광야는 반복될 수 있습니다. 

광야는 멈춤의 표시-분별과 훈련시간
내가 광야에 들어갔다는 것은 ‘일상에서 잠시 멈추라’는 사인입니다. 잠시 멈추어서 다시 한번 내가 지금 누구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이 속에서 내면에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 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광야는 우리의 내면을 노출시키는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내 내면이 노출될 때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건 제 모습이 아니에요. 이건 아니에요”라고 하지 말고,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날 때, “이것이 제 모습입니다”라고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또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만나시기를 원하시는지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 광야라는 곳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더 깊은 방식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그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시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 광야에서 우리보다 먼저 오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하면 광야는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목적이 있는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깊은 만남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깊은 방식’, ‘새로운 방식’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십자가’를 통한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만남을 의미합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만나는 방법입니다. 사막과 같은 광야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시는 집회에서 하나님의 역사, 임재하심 속에 공동체적으로 은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바탕으로 인격적인 하나님과 깊이 있는 만남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신앙이 성장, 성숙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중세에 기독교가 암흑기로 들어갔을 때, 주님을 만나기 위해 사막 교부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교부들은 일상을 떠나 주님을 깊이 있게 만나기 위하여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곳, 내것을 내려놓은 곳이 사막이기 때문에 주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울지만 말고, 힘들다고만 하지 말고, 내면에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왜 예수의 길에서 광야는 필연적으로 거처야할 코스가 되었을까요? 광야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있게 만나지 않고는 예수의 길을 걸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주님은 광야의 주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광야의 주님’이라는 것은 ‘십자가의 주님’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편할 대로만 주님을 만나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십자가가 있는 광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때 새 힘을 얻고 주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