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 속 창립된 충무교회 80주년

포탄 맞은 성전 재건… 강남 옮겨 ‘성령 포탄’ 광복 직후 시계포 2층서 시작 전쟁 고아들 돌보며 성장가도 1979년 대치동 이전 새 역사 2005년 부임한 성창용 목사 ‘금요성령집회’ 등 체질 바꿔

2025-10-22     황승영

성령의 항해 80년 

1945년 해방의 기쁨 속에서 시작된 충무교회의 80년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서울 충무로 진고개 언덕의 작은 예배 모임 ‘이현교회’로 태동한 이래,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강남 이전 결단, 그리고 성령 목회를 통한 부흥에 이르기까지, 충무교회는 한국성결교회의 역사와 함께 복음의 역동성을 증명해왔다.

현재는 ‘복합 캠퍼스형 교회’와 다음 세대를 향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며 새로운 100년의 문을 열고 있다.

전쟁 후 충무로교회 재건예배 당시 성도들

믿음의 씨앗, 이현교회

충무교회의 역사는 1945년 10월 해방 직후, 서울 충무로 진고개 언덕에서 시작된 ‘이현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김광전 목사는 자신이 운영하던 시계포 2층을 예배당으로 내어놓으며 “말씀과 기도만이 민족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목회를 시작했다. 당시 교인은 서른 명 남짓이었지만, 모두 복음의 씨앗을 심는 일에 헌신했다. 교회가 성장하자 충무로 5가의 적산가옥으로 예배처를 옮기며 ‘충무로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곧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교회는 모든 것을 잃었다. 예배당은 무너지고 성도들은 흩어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폐허 속에서도 교회를 다시 세우셨다. 함경남도 함흥 광화리교회 출신 피난민들이 거제도에 거제성내교회를 세우고, 1953년 휴전 후 박명원 목사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 폐허가 된 충무로교회 자리에 다시 교회를 세웠다. 이날 10월 11일은 훗날 ‘제2의 창립일’로 불렸다.

1954년 미 8군 공병대의 도움과 성도들의 헌신으로 새 성전이 완공되었다. 충무교회는 ‘살아남은 자들의 신앙공동체’로 자리 잡았고, 주일학교를 세워 전쟁고아를 돌보며 복음의 빛을 전했다. 1960년대 초 제4대 김석규 목사가 부임해 ‘신학적으로 건강한 교회’를 표방하고, 사랑과 갱신의 목회로 평신도를 말씀으로 세우는 ‘양육하는 교회’로 발전시켰다.

1978년 강남 충무교회 기공예배

강남 선교 시대를 개척하다

1960년대 말, 한국 사회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교회 주변 충무로 일대는 영화산업과 인쇄소 거리로 변모하며 주거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교회의 미래를 고민하던 지도자들은 새로운 시대적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고, 그 논의의 중심에는 “우리가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는 선교적 비전이 있었다.

교회는 1971년 ‘이전연구위원회’를 조직하고, 당시 논밭과 비닐하우스뿐이던 강남 지역을 ‘미래 세대의 선교지’로 주목했다. 3년에 걸친 기도와 논쟁 끝에 김석규 목사는 “교회의 중심은 건물이 아니라 사명”이라는 확신으로 방향을 제시하며 강남 이전을 결단했다. 이 결단은 훗날 충무교회가 ‘강남 선교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되었다.

1974년 제5대 최건호 목사가 부임하면서 강남 이전 비전은 본격화됐다. 최 목사는 “교회는 복음이 필요한 곳으로 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교인들을 설득했고, 수많은 기도 끝에 1977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현 대치동)에 부지를 마련했다. 성도들은 삽 대신 눈물로 터를 다졌고, 전 재산을 헌금한 전낙규 장로, 밤새 건축 현장을 지킨 김영국 권사 등 이름 없는 평신도들의 헌신과 눈물로 1979년 7월 새 성전이 완공됐다.

헌당예배에서 최건호 목사는 “성전은 인간의 힘으로 세워진 돌무더기가 아니라 성도들의 믿음이 쌓인 제단”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강남 지역으로 도약하며 교회 이름도 ‘충무교회’로 새롭게 바뀌었다.

베델성서대학 졸업식

말씀과 성령으로 일군 대부흥기

강남 이전 이후 충무교회는 놀라운 부흥기를 맞이하며 강남 지역의 신앙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예배와 찬양, 말씀과 기도가 중심이 된 교회는 빠르게 성장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교회학교 학생 수가 800명을 넘었고, 성가대와 오케스트라, 청년 찬양단이 연합하여 매주 감동적인 예배를 만들어냈다.

평신도들의 신앙교육은 ‘전도폭발훈련’, ‘베델성서연구’, ‘성경통독운동’ 등을 통해 체계화되었으며, 주중에도 교회는 배움과 교제의 열기로 가득했다. 선교에도 불이 붙어 1980년대 후반부터 농어촌 미자립교회를 정기 후원하고, 장호원·인평·선산·문형 등의 지교회를 개척했으며 워싱턴 D.C.에 ‘워싱턴충무교회’를 설립했다.

당시 최건호 목사는 “도시의 심장에서 세계의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외쳤다. 1994년 최건호 목사는 교단 총회장으로 피선되어 한국성결교회의 안정과 성장에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다. 충무교회는 교단의 중심이자 모범 교회로 자리 잡았으며, 강단에서는 복음의 능력과 사랑의 실천이 함께 선포되었다.

2005년 성창용 목사 취임 및 최건호 목사 은퇴식

성령 목회 20년, 체질을 바꾸다

2005년 충무교회는 창립 60주년을 맞으며 새로운 세대의 목회 리더십을 세웠다. 제6대 성창용 목사의 부임은 교회의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성 목사는 ‘성령 목회’를 핵심 철학으로 삼으며 목회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사역을 펼쳤다.

성 목사 부임 후 가장 먼저 재정비된 금요 성령집회는 매주 수백 명의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하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자리로 자리 잡았다.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뜨거운 집회는 충무교회의 영적 기류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새생명축제는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전도의 장으로 발전하며 ‘기도하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라는 충무교회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성령운동을 통해 교회는 부임 5년 만에 갑절의 부흥을 경험하며 한국교회 침체기 속에서도 부흥은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팬데믹이라는 전무후무한 위기 속에서도 충무교회는 흔들리지 않았다.

온라인 예배와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신앙공동체를 지켜냈으며, 2020년 강단과 본당을 전면 리모델링해 더욱 아름다운 예배 환경을 조성했다. 이 시기 교회는 단순히 ‘모이는 예배’에서 ‘살아내는 예배’로 변화하는 중요한 단계를 거쳤다. 충무교회의 신앙 토양은 지적이고 인격적인 신앙, 단단하고 뿌리 깊은 신앙, 뜨겁고 헌신적인 신앙이라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끊임없이 배우고 인격적 성숙을 추구하는 성도들의 모습, 어려운 문제에 휘둘리지 않고 교회를 지켜내는 단단한 저력, 그리고 위기 때마다 교단과 교회를 도운 뜨거운 헌신은 80년 역사를 지탱해온 힘이 되었다. 특히 새가족의 정착과 영적 성장을 돕는 새가족위원회 사역은 성령 목회를 구현하는 충무교회의 주요 사역으로 꼽힌다.

새로운 100년 비전

이제 충무교회는 2045년 창립 100주년을 향한 항해를 시작하며 ‘다음 세대’ 양육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교회는 주일학교를 유아교회–어린이교회–청소년교회로 재정립하고, ‘BCM(The Body of Christ Model)’을 도입해 성경적 공동체 교육을 강화했다.

저출산과 탈종교화의 흐름 속에서도 교육관 리모델링과 청년 사역을 확대하며 “교회의 미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시작된다”는 비전을 실천하고 있다.

충무교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다음세대

다음세대와 캠퍼스

현재 교회의 핵심 비전은 ‘복합 캠퍼스형 교회’ 조성이다.

1979년 완공된 본당의 노후 시설을 개선하고, 예배·교육·문화·돌봄이 어우러진 열린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 주차장 확충, 도서관·요양원 설립, 청년 문화공간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3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세대 통합형 교회로의 전환이 목표다. 창립 80주년을 맞아 교회는 선교적 DNA를 불태우는 6대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창균 원로장로의 특별헌금과 교회 기금으로 경기도 용인에 태원성결교회를 설립했고, 해외에는 몽골 기념교회 건립을 추진 중이다. 남북의 신앙 유산을 잇는 ‘복음통일비전’에도 발전 후원기금을 전달했으며, ‘사진으로 보는 80년사’ 발간, 기념음악회, 선교봉사대상 시상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성령의 바람 위에

충무교회는 ‘선교 100주년 프로젝트’를 통해 100명의 선교사 파송, 탈북민·미자립교회 지원, 지역사회 봉사 확대를 추진하며, 한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의 복음 허브’로 도약하고 있다. 80년 전 시계포 2층의 작은 예배로 시작된 불씨가 전쟁의 폐허와 강남 시대를 지나 성령 목회의 열매로 피어났다. “걸어온 80년은 은혜의 기록, 앞으로의 20년은 믿음의 도전”이라는 성도들의 고백처럼, 충무교회의 새로운 100년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