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균 교수의 십자가 밑에서(1469호)

십자가는 무릎으로 성취하는 것 겟세마네의 주님은 목숨 걸고 기도했지만 제자들은 깨어 있지 못해 도망치거나 배신 죽음을 무서워하며 어찌 열매 맺기 원할까

2025-10-15     하도균 교수(서울신대 전도학)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입성 후 마가 다락방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최후의 만찬을 베푸셨습니다. 

이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고 떡을 떼어 주시면서 새 언약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새 언약의 백성이 될 것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너무 중요한 일을 성취하시기 위해 베푸신 만찬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님의 길을 아직 온전히 알지 못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한껏 혁명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3년 반 동안 따라다닌 이분이 이제 곧 세상을 뒤엎는 혁명을 일으킬 것이며, 새 언약을 말씀하시니 그날이 왔다고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제자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겟세마네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두 가지 오해입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직접적으로 싸우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이들은 주님께서 한 발자국 물러서서 영적인 수련만을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둘 다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통해 새 언약을 약속하시고 나서, 곧바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겟세마네는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흐르듯이 생명을 걸고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죄 된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온전히 예수님을 닮기 원합니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결국 십자가는 무릎으로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 제자들을 함께 데리고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육신의 연약함으로 깨어 기도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온몸을 짜내듯이 생명을 걸고 기도하셨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었지만,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못하였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단 한 명도 함께 하지 못하고 도망가거나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겟세마네 기도가 있었던 예수님과 기도하지 못하였던 제자들의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지만,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목숨 걸고 기도하심으로서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못하였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시험에 들었던 것입니다.

무릎으로 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무릎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하고 드린 그 기도가 결국 죽음과 다름없는 죽음의 훈련입니다. 죽는 것은 싫어하면서 열매 맺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겠습니까? 겟세마네 기도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옆에서 그 기도하기를 계속 지켜보고 응원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되어 세상을 구원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은 예수가 되기 위해서는, 무릎 없이, 죽음을 각오한 기도가 없이, 그 어떤 이론도 내 삶의 실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오늘날 사랑하는 한국 교회에 적용하고 싶습니다. 오늘처럼 이념이 극과 극으로 나뉘어 치닫고 있을 때, 다른 어떠한 것보다 먼저는 겟세마네의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옳고 그름을 말하기보다, 먼저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울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장은 무릎으로 이룬 기적이 아니었습니까? 다시금 한국교회가 70년대, 80년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눈물로 기도했던 그 기도를 하나님이 한국 교회에 요구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요?

십자가는 기도가 있는 곳에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십자가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릎의 기도임을 다시 새겨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