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여정 끝내는 윤성원 목사

강렬 군목 → 심방 매니아 → 교단 화해자 기도문 헬기 살포 등 창의력 넘쳐 부교역자 땐 ‘주5일 대심방’ 감당 총회장 등 맡으며 숱한 난제 풀어

2025-09-17     한국성결신문

윤성원 목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청강(淸江)’이라 불렸다. 맑은 강물처럼 힘차게 살아온 그의 삶과 목회를 지켜본 신학교 동기가 붙여준 이름이다. 

1955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와 경찰 공무원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강한 리더십과 신앙심을 키웠다. 은행원을 꿈꾸던 시절도 있었으나, 어머니의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떠올리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에스라성경연구원에서 성경에 깊이 뿌리내리며 ‘한 책의 사람’이라 불릴 만큼 치밀하고 균형 잡힌 목회를 펼쳤다.

그는 군목으로 안수받아 육군 중위로 임관, 강원도 양구 천봉군인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당시 연대장이던 정연우 대령의 전폭적 신뢰 속에 헬기로 위로 기도문을 살포하고 ‘성탄절 효자운동’을 전개하는 등 창의적인 사역을 펼쳤다.

이어 제51후송병원 군인교회에서는 병실 구역예배와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평신도를 세우는 군종 목회를 실천했다. 군목 사역 후에는 청량리교회와 독립문교회 부목사로 섬기며, 주 5일 대심방과 새벽기도회를 감당하며 목회를 체득했고 ‘평신도 중심, 수평적 리더십’의 목회 철학도 확립했다.

1988년 은혜교회를 개척하며 담임목회를 시작한 그는, 2004년 삼성제일교회 제3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본격적인 목회의 꿈을 펼쳤다.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 정직한 사회’라는 비전을 내걸고 말씀과 기도를 우선시했으며, 다음세대 교육과 평신도 훈련, 국내외 선교, 체계적 성경공부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강단 리모델링과 교회 CI(통합 이미지) 작업으로 예배에 활력을 불어넣고, 영성훈련·아버지학교·어머니학교 등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의 영적 성숙을 도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유튜브 예배 중계, 온라인 심방과 구역예배 등 디지털 사역을 도입해 공동체를 지켜냈다.

윤 목사는 교단과 교계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제112년차 교단 총회장에 당선돼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는 성결교회’를 표어로 공동체 화합에 힘썼다. 독단적 결정보다는 협의를 중시했고, 수년간 미해결로 남았던 재판 문제를 해결하는 등 난제를 풀어 ‘통 큰 리더’로 평가받았다. 또한 교단 유지재단 이사장, 서울신대 총동문회장, 한국성결신문 편집위원장, CBS 이사 등을 맡아 교단과 교계 발전에 공헌했다.

교단 동역자들은 그를 “흐르는 물처럼 유연한 친구”, “외유내강한 목회자”, “나무보다 숲을 보는 지도자”로 회고한다. 한국성결신문 사장 홍재오 장로는 “구성원의 지혜를 모아 수년간 풀리지 않던 재판 문제를 해결했다”며 그의 통합적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고, 강준민 목사(엘에이 새비전교회)는 “매년 2%씩 변화하며 장기 비전을 세운 유연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윤성원 목사의 생애는 단순히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어떤 난관도 기회로 바꾸는 치밀한 준비와 계획이라는 동력을 품은 여정이었다. ‘청강’ 같은 그의 삶은 오늘도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며, 삼성제일교회는 그의 정신을 이어 목회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