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1465호)

귀가 닫히면 신앙도 닫힌다

2025-09-10     전광병 목사(부흥지방 성산교회)
전광병 목사(성산교회)

혹시 여러분은 시각장애인보다 청각장애인들이 글자를 읽고 쓰는 일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입 모양을 보고 소리를 알아채는 사람이 나오기는 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에나 해당합니다. 정확한 통계는 어렵지만, 우리나라에 사는 청각장애인(농인, 聾人)은 약 39만 명인데, 그들의 문맹률은 30%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성인의 문맹률 4.5%(2021년 9월 세계 문해의 날에 발표 됨)에 비하면 매우 높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말에는 소리와 더불어 감정이 실립니다.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한다’라는 말을 배워도, 청각장애인은 그 느낌을 알지 못해서 ‘사랑’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신체가 불편한 사람보다도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청각장애인이라고 합니다.

어느 분의 글을 보다가 한자 ‘들을 청’(聽)자를 풀이한 것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왕(王)과 같이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귀(耳)와 열(十)개의 눈(目)이 한(一) 사람의 마음(心)을 들여다보듯이 상대를 향해 집중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듣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말을 들으려면 속이 뒤틀리고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마음이 답답하여 어쩔 줄 모르게 됩니다. 그러기에 차라리 내가 뒤집어 말해버리는 것이 낫다고 여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귀를 닫아버립니다.

우리는 듣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말들을 엄마로부터 들어야 하듯이, 우리는 먼저 들어야 합니다.
아라비아 속담에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사를 좋아하는 중동인들의 말이긴 하지만,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말을 듣는 것이 그렇게 유익하고 좋은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얼마나 큰 유익이 되겠습니까? 놀랍게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듣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에 칠십오 세에 믿음의 인생이 시작됩니다. 모세는 말씀을 들음으로 팔십에 믿음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말하는 자의 지시를 받아들인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기를 포기하는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들음을 통해 자신의 삶이 뒤흔들리고,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꿈꿔보지도 못했던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들음은 그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가 됩니다. 듣지 않으면 신앙의 세계가 열리지 않습니다.

들음은 순종을 뜻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반응하고, 응답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듣지 않았기에 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가 있다고 다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있는 자세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들리고 깨달아집니다.

듣는 것은 신앙의 정점에 이르게 합니다. 신명기 6장 4절 이하의 말씀은 “쉐마 이스라엘”(들으라, 이스라엘!)로 시작되는데, 이 말씀은 오늘날까지 구약 말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먼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마음을 닫아두면 한마디도 들을 수 없지만, 마음이 열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세계가 열립니다.

하나님께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를 듣는 청종(聽從)이 일만 마디의 청원(請願)보다 소중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울려 퍼질 때 들으십시오. 말씀이 깨달아질 때 순종하십시오. 마음을 다하여 듣고, 무릎을 꿇고 듣는 자가 지혜를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