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1463호)

폭염-폭우… 기나긴 여름나기

2025-08-20     이성범 장로(제천 동신교회 원로)
                   이성범 장로(제천 동신교회 원로)

이른 새벽이지만 좀처럼 공기 맛이 상큼하지 못하다. 하지만 한 해의 절반을 훌쩍 넘긴 지금, 우리는 여전히 무더운 날씨를 견디면서도 머지 않아 찾아올 가을의 설렘을 함께 느끼곤 한다. 

내리쬐던 한여름의 태양이 서서히 기울고, 입추(立秋)와 처서(處暑)를 품은 8월, 하늘이 높은 푸르름으로 물드는 시기가 눈앞에 와있다. 그래, 어린아이처럼 들뜬 마음에 아침식사 후 지인 몇분들에게 전화를 한다.

“아이구, 박 실장님, 그간 잘 계셨는지요? 시간 되시면 오전에 의림지 솔밭공원에 가서 둘레길도 걸으면서 가벼운 산책이나 하시지요?”라고 청하니 박 실장님이 “그래요, 장로님, 아주 좋습니다. 그러면 몇시에 거기서 만날까요?” 라며 쾌히 응해 주신다. 

나는 박 실장님과 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또 한 분의 지인분에게 똑같은 청을 하니 그분도 아주 잘 되었다며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사실 우리는 가끔 정구장에서 함께 운동을 하는 사이로 가까운 곳에 여행도 함께 가곤한다. 더욱 고마운 것은 연배가 거의 같다는 것이다.

약속대로 우리는 의림지 솔밭공원에서 만났다. 날씨가 아직은 더워서 그런지 오전 중에도 솔밭공원 여울물에 발을 담구는 아이들도 있고 노란색, 빨강색, 파란색 작은 텐트들이 줄지어 놓여져 있다.

가족들끼리 함께 온 모양이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줄 음식을 연신 챙기는가하면  아빠들은 아이의 손을 잡고 공원주위를 둘러보기도 한다. 멀찍이 긴 의자에 앉아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깃든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음에 얼마나 행복한가 말이다. 

불현듯 어릴 때 나의 모습이 뇌리를 스치곤 한다. 나는 제천 인근의 공전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제천읍으로 이사를 왔다. 시골 공전리에 살 때 여름이면 저녁에 개울가에 모여 온 동네 사람들이 흐르는 물에 미역도 감고 강변에 멍석을 깔고 앉아서 달빛을 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또 한쪽에서는 엄마들이 가마솥에다가 감자를 쪄서 온 동네사람이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고된 하루의 피로를 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경제적으로는 60년대 초라 어려웠지만 서로의 사랑나눔으로 어느 하나 불평없이 행복했다.

얼마 후 자리를 떠서 둘레길을 걸어가는데 큰 소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고 부채를 부치면서 더위를 식히는 할머니 몇분을 뵙게 되었다. 가까이 가면 방해가 될까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뵈니 지난 시절이 다시 한번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우리와 같이 살아온 동년배분들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나는 속으로 ‘그래, 우리도 저랬지, 선풍기는 무슨? 에어컨은 말할 것도 없고? 그저 자연 바람에, 부채로, 그 무더위를 식히곤 했지, 그래서 장날에 아버지께서 읍에 가시면 꼭 부채를 챙겨오시곤 하셨지’하며 너털웃음을 짓고 만다.

어이 참, 둘레길을 걷는 것도 운동이라고 다리가 아프다. 그늘 아래 벤치에 몸을 맡겨본다. 가져온 물을 마시면서 평소에 말씀이 적은 김 회장님이 말문을 여신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닌 7월달에 뜻하지 않었던 기록적인 폭우로 많은 분들이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가족까지 잃어 버린 그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수많은 이재민들이 하루 빨리 복구와 치유로 일상을 되찾아야 되는데요? 걱정입니다”라고 말이다. 

옆에 있던 나도 “암요, 그렇구 말구요,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집니다. 참, 지원봉사자분들 대단하셔요, 고맙기 그지없구요, 한마음으로 잘 이겨 나갈 것입니다”라고 아쉬움 마음을 나누며 발길을 돌려 내려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간절히 기도해본다.

폭우로 인해 어려움을 당한 이재민들에게 하루속히 아픈 상처의 치유와 복구로 평온한 일상의 삶이 회복되기를,그리고 모든 분들이 폭염에 건강하게 올여름을 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