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성경 18번 필사 94세 박충석 목사(방배교회 원로)

“ 비록 눈은 침침해도 성경 쓰는 마음은 꼿꼿” 2002년 은퇴 후부터 펜 잡아 한글은 물론 영어-일어로도 “ 컴퓨터로 예화 끼워맞춘 설교와 쓰면서 은혜받은 설교 비교 말라”

2025-08-06     황승영

“말씀을 쓰는 동안, 은혜는 더 깊어졌고,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9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성경필사에 불꽃을 태우고 있는 박충석 목사(방배교회 원로·사진)의 말이다. 박 목사는 “그동안 성경을 필사하며 하나님 말씀에 더 깊이 빠졌는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성경을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겠다”며 성경필사의 열정을 보여줬다.

그의 성경을 향한 첫 움직임은 은퇴 후 찾아온 깊은 허전함에서 비롯됐다. 2002년 목회 현장을 떠나자, 그는 자신이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것이 성경 필사였다. 처음엔 마음을 다잡기 위한 단순한 결심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말씀 속 은혜를 다시금 깊이 체험하게 되었고, 필사는 점차 그의 삶을 채우는 중심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 손으로 성경을 써 내려가는 일이야말로 자녀들과 후배들에게 물러줄 수 있는 신앙의 유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필사는 어느덧 그의 손끝에서 18권의 성경으로 완성되었다. 한글 뿐만 아니라 영어와 일어로도 필사했다. 지금도 일본어로 모세오경을 쓰고 있는 중이다. 영어 성경을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건,

선교사들과의 교류, 빌리 그레이엄 집회에서 들은 말씀, 그리고 타임지를 통해 독학한 결과이다. 그렇게 익힌 영어는 필기체로도 능숙하게 표현되었고, 글씨는 가지런하고 정갈했다. 일본어 성경과 한글 성경 역시 한글자씩 정성을 담아 써 내려갔으며, 그 손길에는 말씀을 향한 깊은 경외와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처음엔 붙였다 떼었다 했지만, 나중엔 규격이 맞게 되더라고요. 글은 노력한 만큼 늡니다.”

박 목사는 성경을 필사하며 설교의 진실성을 되찾았다고 말한다. 그는 “컴퓨터로 예화를 끼워 맞추는 설교와는 다르다”며 “한 줄 한 줄 쓰면서 은혜를 체험한 설교는 성도들의 영혼을 움직인다”고 말했다. 특히 말씀에 젖어야 설교가 먹힌다는 것을 성경을 필사하면서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후배 목회자들에게 “성경을 소설처럼 읽지 말고, 필사하며 말씀 속 은혜를 체험하라”고 조언했다.  

성경을 쓰는 그의 일상은 여전히 말씀 중심이다. 오늘도 말씀을 손으로 새기며, 영혼을 다듬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다. 매일 6,000보를 걸으며 성경도 암송하고 있다. 

박 목사는 자신을 “바가 쇼지키”라 부른다. 일본어로 ‘바보 정직’. 맨날 성경만 쓰는 삶이 바보 같았지만, 그는 그것이 성직자의 길이라 믿는다. 이런 박 목사는 아직도 꿈이 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난해한 구절을 풀어주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주석과 원어를 비교하면 됩니다. 눈은 침침하지만, 남은 여생은 기도하며 교회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자신의 육신도 세상을 위해 나누고 싶어 시신 기증도 약속했다. 강단을 떠나서도 노(老)목사의 아름다운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