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1459호)
체제전쟁이 아닌, 체제 유지를!
최근 우리 사회에서 ‘체제전쟁’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보수 기독교계 집회에서 일부 원로 목사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 주장했고, 청중들은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투쟁적이며,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극단적 대립을 부추깁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이념 양극화는 심각하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체제전쟁이 아니라 체제유지입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며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 최선의 가치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6·25 전쟁으로 체제전쟁을 겪었고, 그 대가로 엄청난 희생을 치렀습니다. 이후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북한은 사회주의를 선택했습니다. 이제는 체제전쟁이 아니라 평화공존과 체제 유지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여전히 체제전쟁을 주장합니다. 좌경화, 종북, 반미 세력의 활동, 주한미군 철수 주장 등을 이유로 극단적 대응을 요구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도 이러한 이념 편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종북·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자 했고, 민주당을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집단으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체제전쟁이 아닌 체제 유지의 길입니다. 사람마다 생각과 이념은 다를 수 있으며, 이는 틀림이 아니라 다름입니다. 다양한 이념을 가진 국민들이 함께 헌법을 만들었고, 그 헌법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토대입니다. 헌법 제19조는 양심의 자유를, 제21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이는 정치적·종교적 신념을 포함하며, 자유주의든 보수든 진보든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습니다.
특정 이념만을 선이라 규정하고, 다른 이념을 악으로 몰아가는 이분법은 반헌법적이며 자유민주주의를 해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부족, 극단적 이념 편향, 선동 정치가 난무합니다. 진보적 정책을 사회주의로 낙인찍고, 평화적 남북 교류를 종북으로 몰아가는 일도 벌어집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량을 믿어야 합니다. 최근 비상계엄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을 전 세계가 지켜보았고, 국민의 정치적 성숙과 회복력에 놀라움을 표시했습니다. 이제 어떤 정치세력도 헌법적 정체성을 흔들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기초를 흔들려는 정권은 국민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국민은 보수정권에서 민주당 정권으로 교체할 줄 아는 지혜로운 심판자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권도 영원하지 않으며, 5,200만 국민은 중심을 지키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국민의 눈은 무섭고 판단은 냉철합니다.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치 성향은 극우 14%, 보수 23%, 중도 38%, 진보 21%, 극좌 4%로 나타났습니다. 중도층 40%가 국가의 방향을 결정짓는 균형추입니다.
체제전쟁 없이도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유지됩니다. 그래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입니다. 향후 지방선거, 총선, 대선이 예정되어 있으며, 국민은 투표로 정권을 심판합니다. 지금은 체제전쟁을 말할 때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평화로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야 할 때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교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으로서 세속 정치에 종속되지 않으며, 어떤 이념에도 갇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화평을 깨뜨리는 이념에 매이지 않으며, 정치적 글이나 영상을 무분별하게 옮기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의 본질을 붙잡고, 분열된 세상에 화해의 다리를 놓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