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따뜻한 밥상 김수열 집사(홍은교회)

“문산의 ‘마약 김치찌개’ ‘3000원 밥상’ 은혜 넘쳐” ‘따뜻한밥상’ 유일 평신도 운영 김수열 집사 1호점 최운형 목사 간증 보고 결심 2023년 누나의 식당 자리서 시작 몸은 고되도 이름 없는 후원 많아 신앙 성장하고 가족사랑 단단해져 주님 나라 커지듯 점포 늘어났으면

2025-07-09     김준수
2년째 따뜻한 밥상을 운영 중인 김수열 집사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외진 듯 보이는 한 골목길 1층. 간판도 소박한 이 작은 식당은 점심시간이 되면 금세 사람들로 북적인다. 테이블은 10개 하루 평균 손님 수는 약 70명. 메뉴는 김치찌개 하나에 밥은 무한 리필이지만, 가격은 단돈 3,000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밥상에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기도와 감사, 복음이 담겨 있다.

이곳은 ‘따뜻한 밥상 문산점’. 전국 20개 지점 가운데 유일하게 평신도가 운영하며, 여름 메뉴로 냉모밀을 제공하는 단 하나의 지점이다.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열 집사(홍은교회)는 “이 자리는 제가 선택한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리이고, 저는 그저 흘러가도록 순종했을 뿐이다”고 고백한다.

김 집사는 한때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입시학원 강사로 대형 학원 중간관리자로 일했다. 성공하기 위해 개인학원을 차렸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봤다. 그러던 어느 날 CBS 간증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에서 따뜻한 밥상 1호점(연신내)을 운영하는 최운형 목사의 간증을 보게 됐다. 

김 집사는 “최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울컥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당시 김 집사의 누나가 쓰던 식당 자리가 비어 있었고, 그는 “이 공간을 하나님께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렇게 2023년 가을 ‘따뜻한 밥상 문산점’ 문을 열게 됐다.

3,000원 김치찌개가 주는 위로

식당의 하루는 새벽 6시에 시작된다. 김 집사의 어머니가 먼저 나와 재료 준비를 시작한다. 김 집사도 오전 9시부터 김치를 볶고, 콩나물을 삶는다. 다시마, 무, 양파, 황태, 파뿌리, 까나리액젓, 맛술 등의 재료가 들어간 육수는 50분 동안 푹 끓인다. 김치는 일주일에 40kg씩 볶으며, 쌀도 40kg을 사용한다.

모든 조리와 홀서빙, 설거지는 오로지 김 집사의 몫이다. 그는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서 직접 재료를 구입하고, 정성껏 손질한다. 주문 후 7분이면 김치찌개가 손님 앞으로 나가는데, 식당을 혼자 운영하다 보니 손이 절로 빨라졌다. 브레이크타임도 최근에야 생겼다. 병원이나 외출이 필요한 날엔 문을 잠시 닫을 뿐이다. 

기자 역시 인터뷰를 위해 지난 6월 27일 오픈 시간인 오전 10시 30분에 맞춰 식당을 찾았고, 김 집사와 함께 홀서빙과 설거지를 함께 했다. 브레이크타임 전까지 약 5시간 30분 동안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손님맞이와 테이블 정리를 돕는 동안 기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이건 밥집이 아니라 예배의 자리다.”

김 집사는 손님을 ‘섬김의 대상’으로 여긴다. “진상 손님은 없습니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보낸 이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낭을 메고 조용히 혼밥하는 청년, 두부를 서비스로 달라는 할머니, 단무지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어르신, 다문화가정의 모자, 햄을 빼달라는 단골까지 하나하나 기억하고 응대한다. 

따뜻한 밥상에서 따뜻한 한끼 식사 중인 손님들

유상덕 어르신(66)은 “혼자 밥 차려 먹기 어려울 때 자주 온다”며 “김 집사님은 사람이 참 성실하고 착하다. 이 가격에 이 정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3,000원이라서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만 원짜리 식사보다 낫다”며 “주인이 항상 웃고, 더 가져다 먹어도 인상 한 번 안 쓰신다”고 덧붙였다.

정명수 어르신(70)은 “광장시장에 마약김밥이 있다면, 문산에는 마약 김치찌개가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처음엔 서민을 위한 가게인 줄 알았는데, 와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더라”며 “운영하시는 분이 매니저보다 더 친절하시고 음식도 고급 식당 못지않다”고 했다.

쌀, 김치, 콩나물, 육수… 하나하나 재보고 따지기 시작하면 3,000원이라는 가격으로 이익을 볼 수 없는 구조다. 그러나 그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이웃에게 부담 없는 밥 한 끼를 제공하는 따뜻한 밥상의 정신을 묵묵히 실천한다. 은평성모병원, 정체불명의 후원자, 누가 보냈는지도 모를 쌀 택배… 하나님이 그때그때 꼭 필요한 만큼 채워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김 집사는 “쌀이 떨어질 때가 되면 택배가 오는데 누가 보냈는지는 모를 때가 많다. 하나님의 공급은 늘 정확하다”고 고백했다.

온종일 홀과 주방을 오가며 김 집사는 방아쇠수지증후군, 허리 통증, 팔꿈치 염증 등으로 고생한다. 수시로 주사를 맞고, 수술 권유도 받았지만, 그는 말한다. “너무 아파서 설거지하다 주저앉은 적도 많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아침만 되면 일어날 힘이 생겨요. 눈이 떠지고, 몸이 움직여요. 그게 은혜죠. 저는 체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위치한 따뜻한 밥상

‘따뜻한 밥상’으로 확장되는 하나님 나라

처음엔 가족들도 걱정이 컸다.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 무엇보다 김 집사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았지만, 가족들에게 따뜻한 밥상에서의 은혜를 꾸준히 나눴다. 그러자 두 딸은 “아빠가 말한 하나님, 진짜 살아계신 분 같아”라는 말을 건넸다. 김 집사는 “그 한마디에 눈물이 났다. 내가 이 길을 잘 가고 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따뜻한 밥상을 시작한 이후 김 집사의 신앙도 한 뼘 더 성장했다. 홍은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로 봉사하며, 주일마다 예배 후 담임목사가 진행하는 성경공부도 기쁨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매주 한 번씩 가정예배를 드리며 가족들이 서로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 있다. 가정예배에서도 따뜻한 밥상 이야기는 가족들을 웃게 하고, 울게 만든다.

어느 순간부터 두 딸도 따뜻한 밥상과 아버지를 위한 기도제목을 나누기 시작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신앙의 동역자들과 나누는 모든 것이 김 집사가 따뜻한 밥상을 운영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김수열 집사는 자신을 ‘통로’라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은혜와 자비를 고이 담아, 필요한 이들에게 흘려보내는 삶을 사는 중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섬김이 쌓일수록, 한 가지 간절한 바람이 더해진다.

무엇보다 ‘소유가 아닌 순종으로만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그 중심에 있다. ‘따뜻한 밥상 문산점’은 그의 것이 아니다. 공간도, 음식도, 만나는 손님도 모두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기에 자칫 이 일이 ‘내 사역’, ‘내 열매’가 되지 않도록 매일 마음을 다잡는다. 김 집사는 “이 자리도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할 수 있다. 그때 담담히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매순간 다짐한다.

또한 그는 자신보다 먼저, 이웃의 필요를 먼저 바라보는 눈과 마음을 달라고 기도한다. 식당 문을 열면 보이는 것은 밥을 기다리는 손님들 뿐이다. 하지만 김 집사는 그들의 얼굴 너머 형편과 사정을 읽고 싶어 한다. 찌개 한 그릇, 콩나물무침 하나에도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위로를 담고 싶기 때문이다. 

단출하지만 사랑이 듬뿍 담긴 김치찌개 한상

“진짜 이 김치찌개가 필요한 분들이 계세요. 밥 한 끼로 하루를 버티는 분들. 그분들이 이곳에 오셔서 하나님을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이 따뜻한 나눔의 식탁이 더 많은 지역으로 확산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김 집사는 “전국 곳곳에 ‘따뜻한 밥상’이 생긴다면, 그건 단지 밥집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따뜻한 나라가 번져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기도하며 김치를 볶고, 육수를 끓이고, 뚝배기를 정성껏 내어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고백한다.
“하나님, 오늘도 제가 복음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