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전철한 선교사, 선교 50주년 특별 인터뷰
외국인 선원 전도로 첫발, 외국인 사역 대부로 STU 졸업 뒤 외항선교회 활동 선교선 ‘로고스호’ 타고 세계로 북한 아동 구호활동 등 펼치다 국내 이주민으로 선교지 넓혀 “260만 외국인 중 10%만 복음 다문화 아이들, 한국교회 미래”
“50년 전 처음 복음을 들고 부두에 올랐을 때, 이 길이 이렇게 멀고 험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매 순간 함께 하셨고, 마침내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1975년 인천항 선원들을 전도하는 것으로 시작해 해외선교를 넘어 이주민 선교까지 한결같은 복음의 길을 걸어온 전철한 선교사가 올해로 선교 50주년을 맞았다. 그는 외국인선교회와 국내이주민선교회를 창립하며 새로운 선교지로 주목받는 다문화 사회를 향한 전략을 제시해왔다. “선교는 은퇴가 없는 사명”이라는 그의 고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결같이 걸어온 50년, 인내의 사역이 결실을 맺다
전철한 선교사는 1975년 한국외항선교회 인천지부에서 사역을 시작한 이래, 로고스와 둘로스 선교선, 남아공 정착 사역, 북한 NGO 활동, 국내 이주민 선교까지 꾸전히 복음의 길을 걸어왔다. 올해로 벌써 50년. 그는 지금도 “선교는 끝난 일이 아니라 계속 되어야 할 사명”이라며 또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그의 선교 여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1975년, 서울신학대학교 졸업 직후 인천 성산감리교회 사무실에서 한국외항선교회와 첫 사역을 시작했다. 당시 외국 선박이 인천항에 들어오면 전도지와 복음서를 들고 배에 올라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의 첫 임무였다. 그는 “말도 문화도 다른 외국인 선원들에게 처음 전도지를 건넬 때의 떨림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1978년 OM선교회의 선박 ‘로고스’가 인천을 방문하며 그의 사역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한국교회가 ‘세계선교’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게 여기던 시절, 로고스호는 24개국 선교사 120여 명이 승선한 세계 선교의 플랫폼이었다. 전철한 선교사는 “이 배를 통해 세계 선교의 현실을 목격했고, 그때 선교의 눈이 열렸다”고 했다.
이후 그는 유럽,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시아까지 로고스를 따라 선교지들을 누볐다. 이때 처음 접한 다문화·다종교 환경은 이후의 선교 방향성 전체를 형성한 중요한 경험이었다.
1985년에는 가족과 함께 대형 선교선박 둘로스호에 승선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들과 갓 말을 뗀 막내 아들도 타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몸으로 체험하며, 배 위에서 선교 오리엔테이션을 함께 받았다. 그는 “선교는 혼자 가는 길이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부르심을 받았고, 함께 훈련받는 길이었다”고 강조했다. 가족이 경험한 문화 충격과 적응의 과정은 팀워크와 겸손, 섬김의 선교 정신을 배우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1987년부터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10년간 현지 선교에 매진했다. 외항선원 사역, 흑인 어린이 탁아소, 무슬림 말레이족 전도, 코사족 교회 개척 등 다문화·다종교 환경에서의 복음 전파는 쉽지 않았다. 특히 심한 흑백 인종차별 속에서도 그는 “복음은 인종을 넘는다”는 확신으로, 백인·흑인 교회 간의 다리 역할을 감당했다. 케이프타운 선교는 단순한 복음 전파를 넘어, 현지인 지도자를 양성하고, 문화 간 협력을 일으키는 구체적 변화로 이어졌다.
1997년에는 미국 시애틀에 본부를 둔 NGO 월드컨선의 초청으로 북한 아동 구호사역에 참여했다. 그는 “모금에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북한의 기아 실상을 전하며 미국과 한인사회 교회들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미국 전역을 돌며 북한 어린이의 생존을 호소했고, 수백만 달러 규모의 의약품과 영양식품을 북측에 보내는 결실을 거두었다. 그는 이 시기를 “선교는 단순한 설교가 아니라 고통에 대한 응답이며, 믿음과 행동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회고했다.
2001년 귀국한 그는 새로운 선교지를 발견했다. 바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이들이 머무는 곳이 우리 발 앞에 와 있는 선교지”라는 확신으로, 인천 남동공단에 ‘한국외국인선교회(FAN: Friends of All Nations)’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컨테이너 두 동에서 시작했지만, 방글라데시, 필리핀, 러시아, 태국, 파키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확대해 나갔다.
영어예배, 다국어 성경공부, 무료진료, 문화적응교육 등 다양한 사역이 병행되었고, 이후 40개 국내 지부와 12개 해외 지부로 확산되었다. 전 선교사는 “외국인 사역은 단순한 전도가 아니라 언어·문화·노동·법률 문제를 함께 껴안는 총체적 선교”라고 말했다. 한 번의 전도보다, 한 사람의 필요를 책임 있게 감당하는 일이 복음을 진정으로 전하는 길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OMS와 협력해 ‘T&M(Train & Multiply)’ 교회증식 프로그램을 도입, 34개국 언어로 번역된 교재로 다문화권 사역자와 외국인 제자 양성에 힘썼다. 현재 T&M은 국내 다문화선교와 세계 한인선교사들까지 확대 보급되고 있다.
외국인선교회의 핵심 전략은 여섯 가지로 정리된다. △복음 전파 △제자 양육 △선교사 훈련 △국내 귀국 선교사 사역 연계 △자국민 복음 연결 여섯째 현지 교회 개척이다. 그는 이 전략이 “그저 프로그램이 아니라, 50년간 현장에서 피와 눈물로 만든 원칙”이라고 했다.
특히 국내에서 거주 중인 외국인 260만명을 ‘제자 삼고 다시 자국으로 파송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실천적 노력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는 2018년 창립한 국내이주민선교회 초대 대표를 맡아 이주민선교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섰고, 지금도 교단의 이주민선교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국내 이주민 사역의 현실도 냉정하게 진단했다. “300여 단체가 외국인 사역을 한다 해도, 실제로 복음을 접하는 사람은 전체의 10%도 안 됩니다. 결국 한국교회가 동참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전 선교사는 한국교회 5만 교회 중 2만 교회가 외국인 선교에 동참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은퇴 성도들을 위한 시니어 선교사 양성 프로그램도 병행하고 있다. 이 사역은 한국교회의 다음세대 전략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한국교회의 미래이자, 어머니의 고향을 향한 복음의 징검다리”라며, 다문화 가정 방과후 학교, 한글교실, 가족 돌봄을 교회가 감당해야 할 새 사명으로 제시했다. 국내 선교가 단지 외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재도약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024년 전철한 선교사는 다시 한국외항선교회 상임회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26년간 몸담았던 그곳, 선교 여정을 처음 시작했던 바로 그 자리다. 그는 “선교는 은퇴가 없다”며, 후배 선교사들을 위한 훈련, 재정·조직 기반 정비, 한국교회의 선교 방향 수립을 위해 다시 현장에 섰다.
그에게 선교는 결코 이벤트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쉼 없이 걸어야 했던 순례자의 길이었다. 수많은 낯선 땅과 언어, 문화의 장벽 앞에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길을 걸었다. 고된 여정이었지만 그는 말한다.
“50년 동안 인내하고 한 길을 걸었더니, 하나님께서 결실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길을 되짚으며 다음 세대에게 말한다. “선교는 특별한 사람이 가는 길이 아니라, 부르심 앞에 순종한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선교는 여전히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