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철 목사의 책 읽어주는 오두막(1458호)
확신과 공손을 함께 갖추게 하소서
오늘 소개하는 일반 서적은 니컬러스 스펜서의 『마지스테리아』이고, 신앙 서적은 리처드 마우의 『무례한 기독교』입니다.
일반 서적입니다. 저자 니컬러스 스펜서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공부한 정치신학자입니다. 그는 책에서 과학과 종교가 서로 양립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이 있지만 또한 전혀 겹치지 않는 마지스테리아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지동설로 대표되는 천문학과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생물학 및 지질학과의 충돌을 거론합니다.
“과학과 종교는 모두 ‘인간이라는 중첩된 부분을 가지며, 동일한 진리를 향해 다른 방향에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다. 서로 모순될 수 없는 진리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종교의 차이는 어쩌면 범주론의 차원이 아니라, 요한 바오로 2세가 말했듯 인식론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P.11)
책을 읽다 보면 과학과 종교는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중첩되는 마지스테리아로서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기나긴 여정에서 서로의 훌륭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특별히 11장 ‘균형’에서 중요한 것을 깨닫습니다. 과학과 종교가 마지스테리아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의견 충돌과 논쟁을 넘어 미움과 저주로 달려가는 모습이 과학과 종교 모두를 해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갈릴레오 재판에 상응하는 ‘옥스퍼드 논쟁’에서 헉슬리(프로 과학자)와 윌버포스(성직자며 아마추어 박물학자)의 대결은 실로 과학과 종교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습니다.
중세 시대 가톨릭교회의 교황이 종교는 물론이고 과학의 마지스테리아를 독점하려고 하였던 것처럼 18, 19세기 유럽은 물론이고 오늘날 21세기에도 과학과 종교의 마지스테리아 주도권 싸움은 피 튀기듯 거칠고 독합니다. 안타깝기만 합니다.
신앙 서적입니다. 리처드 마우는 칼빈대학교에서 기독교철학과 윤리학을 가르쳤고, 풀러신학교의 총장을 역임한 복음주의 신학자입니다.
마우 총장이 『무례한 기독교』를 쓰게 된 주된 목적과 관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복음과 사회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천착해 왔던 복음주의 개신교 목사들에게 ‘거룩한 세속성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비기독교적인 사조와 삶의 패턴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가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다른 신앙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대결하지 않고 공존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또 그들과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해 나름대로 방안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일이 이 시기의 주요한 관심사였다.”(P.10)
책을 읽으면서 받는 도전과 감동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무례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무엇’(what)을 전하느냐보다 ‘어떻게’(how) 전해야 하는지에 늘 초점을 맞추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사실 마우 총장의 말이 쉬워 보이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이론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점점 사나워지고 전투적이 되어 가는 사회에서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비일상적인 정중함’(Uncommon Decency)으로 목사다운 품격을 지킨다는 것이 또 하나의 치열한 싸움입니다.
두 권의 책 모두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719페이지 벽돌 분량과 불편한 과학 이론을 통 큰마음으로 읽어내 보십시오. 철저한 복음주의자의 『무례한 기독교』를 향한 울부짖음을 읽어내 보십시오. 비기독교인이 아니라 교회를 향하여 반기독교인의 자세를 취해가는 청년들의 시선을 피하지 말고 읽어내 주십시오. 마우 총장은 목사들에게 ‘비그리스도인에게서도 배우라’고 외칩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처럼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NOMA(Non-Overlapping Magisteria) 곧 ‘겹치지 않는 마지스테리아’로 가져가야 할지, 아니면 니컬러스 스펜서처럼 ‘과학과 종교, 그 얽히고설킨 2천 년 이야기’의 마지스테리아를 예의 있게 계속 써 내려가야 할지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