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오개(1456호)지난 겨울,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서
▨… 지난 겨울,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목회자가 강단에서 요청했다. ‘우리 대통령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도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예배당을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설교 준비하면서 목회자가 가장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누군가 물었다. ‘신학적 깊이인가? 성경적 해석인가?’ 그는 답했다. “아닙니다. 신학적 깊이도 성경의 해설도 아닌 눈치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좌와 우, 여와 야, 보수와 진보가 서로 갈라지고 있다. 정치판이 요동칠 때마다 교회도 흔들린다. 대선이 끝났는데도 성도들은 서로의 정치색을 먼저 살핀다. 교회 안에서 침묵이 가장 안전한 길이 되어 버렸다.
▨…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성령강림절 강론에서 ‘무관심과 증오의 벽을 허물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한국교회 안에서는 더 높은 담이 쌓이고 있다. 그래서일까. 교단 총회장도 취임사에서 “교단 안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화해조정 TF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교단의 분쟁과 분란을 중재하는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민을 갈라놓은 혐오와 대결 위에 공존과 화해, 연대의 다리를 놓겠다”고 선언했다. 교단을 이끄는 총회장도,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도 풀어야 할 과제는 같다. 바로 통합이다.
▨…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앙감정론』에서 ‘진정한 신앙은 이념을 초월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인간의 한계를 녹인다’고 했다. 맞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녹인다. 씻을 수 없는 오명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도, 그리고 이념도. 교회가 십자가의 정신인 사랑과 용서를 부르짖는 곳이라면, 신앙보다 이념을 먼저 따져서는 안 되지 않은가. 교회의 울타리는 신앙으로 세워져야지 이념으로 갈라치거나 또 다른 벽을 세워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반대하는 성결인이 있을까.
▨… 이념은 선을 긋고 사람을 나누지만, 십자가는 모든 경계를 허문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는 좌우를 갈라놓지 않으셨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셨다. 십자가는 선택의 자리가 아니었다. 용서의 자리였다. 그것은 아래위, 좌우를 아우르는 포용의 길이었다. 우리는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는가. ‘교회에는 예배당 말고는 그 어떤 당도 없다.’ 한 목회자의 이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우가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