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오개(1453호)발로 써도 이보다 낫겠다
▨… “발로 써도 이보다 낫겠다.”라는 표현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최대의 모욕일 수 있다. 지면에 보이는 글씨체, 내용의 지적 수준, 감동적인 표현력, 문장을 구성하는 기술적 능력 등 어떤 방면으로도 ‘글(書)’은 정성을 다한 손 편지, 어머니의 손맛이 깃든 김치와 고추장 된장, 친필 서명처럼 ‘손(手)’과 조화되는 것이지 ‘발(足)’과의 조합은 결단코 아니다.
▨… 읽기 어려운 글씨를 가리켜 괴발개발이라 하는 것은 고양이와 개가 이리저리 뛰어다녀 어지럽게 남은 발자국 같다는 뜻으로 비슷한 복수 표준어(2011년)로 개발새발 이라고도 한다. 악필은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결함이지만 무책임한 선동이 담긴 익명의 벽서(壁書), 일관성과 진정성이 없는 낙서, 쓴 사람도 읽지 못할 정도의 난필(亂筆)은 혼란과 오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요즘 인터넷 공간을 떠다니는 문자들은 무슨 말로 규정할 수 있을까.
▨… 손으로 하는 문화재 해설 연구, 눈으로 하는 기행문에 비하여 발로하는(踏) 역사적 탐구(査)를 가리키는 말 답사(踏査)가 포용적 대안 개념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유홍준.1993. 창비) 출간이 계기였을 것이다. 고은(시인)은, 다른 사람이 가는 곳은 다만 적막강산이지만 유홍준이 가면 거기 몇천 년 동안 잠든 보물이 깨어나 찬란한 잔치를 베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 홀로 순례 여정을 다니면 입을 열어 말하기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발과 다리는 무거워도 머리와 가슴은 감동과 깨달음으로 뜨거워지고 충만해집니다. 살아온 삶에 비춰 성찰의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덤입니다(조재석. 『발로 쓴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종교개혁』). 사실확인도 거치지 않고 책임지지도 못할 막막한 글이 난무하는 요즘, 누군들 읽으면 깨어나는 글을 보고 싶지 않을까.
▨… 신약성경에서 발(fous)아래에서라는 표현은 스승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그 발걸음과 자취를 따른다는 제자의 위치와 삶의 길을 말한다. 베다니의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고 바나바는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바울은 자신을 가말리엘의 발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올여름에는 교회마다 단기선교, 선교여행, 해외 봉사, 휴식을 넘어 예수의 발자취와 선교사의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씩 발로 걷는 선교지 답사로 떠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