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황 고문-406명 참수··· 참혹한 순교지에서 복음을 외치다

118년차 전도왕들, 나가사키 순례 십자가 처형- 소설 ‘침묵’ 주무대와 화산지대 ‘운젠지옥’ 등 돌아보며 “끝날까지 순교정신으로 전도할 것”

2025-05-28     남원준

나가사키는 일본 규슈 북서쪽, 나가사키현 남서부에 있는 도시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히로시마와 함께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곳은 16세기 일본의 쇄국정책과 금교령으로 인해 외국인을 포함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와 고난으로 죽어간 순교의 땅이기도 하다. 지난 5월 14-17일 제118년차 전도왕들이 이곳을 방문해 복음전도의 사명과 순교영성을 되새기고 돌아왔다. 전도왕들이 찾아간 나가사키의 주요 순교지를 역사 자료를 토대로 소개한다. 

니시자카공원 26인 순교비

26인 성인기념관
첫 방문지였던 니시자카공원의 26인 성인기념관 광장에 들어서자 순교자 26인의 모습이 새겨진 기념판이 순례팀을 맞이했다. 상판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라’(Laudate dominum omnes gentes), 그리고 그 아래에는 마가복음 8장 34절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다. 마치 면전에서 순교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엄숙함이 느껴진다. 

26인 순교 사건의 배경은 이렇다. 1582년 오다 노부나가의 사망 후 실권을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가톨릭에 호의적이었지만 가톨릭의 확장에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스페인 선박 산펠리페호가 태풍으로 일본의 도사 지방에 표류해왔다. 이 산펠리호의 선원으로부터 “스페인은 세계적인 강대국이며 선교사를 파견해 현지인을 개종시킨 후 점령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히데요시는 격노하여 선교사들을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이 명령으로 프란치스코회 및 예수회의 선교사, 신자 등 24명이 붙잡혔고 교토와 사카이 등지를 끌려다닌 후 나가사키까지 한겨울의 길 위를 걷게 했다. 걸어간 거리만 1,000km에 이른다. 도중에 2명이 자발적으로 합류,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 니시자카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채 창에 찔려 본보기로 순교를 당했다. 신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언덕을 닮은 니시자카에서 죽기를 원했다고 전해진다. 

소토메 마을

​소토메 구로사키 마을
아름다운 바다 풍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소토메는 일본의 기독교 박해를 배경으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의 무대이기도 하다.  

박해를 피해 숨을 곳을 찾은 잠복 기리시탄들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외부에 눈에 띄지 않는 이곳에서 “7대에 걸친 박해가 끝나면 로마에서 교황님이 보내시는 사제가 성모상을 가지고 저 바다를 통해 오리라”는 바스챤의 예언을 굳게 믿고 내일을 기다리며 살았다.

엔도 슈사쿠는 1966년 세계적 반향을 불러온 소설 『침묵』을 소토메에서 집필했다. 소설 『침묵』은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신앙과 배교,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침묵을 신학적으로 탐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일본 사회에서 신앙이 갖는 의미와 기독교 박해 속에서의 인간적인 갈등을 깊이 있게 조명하며 신앙과 고난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한다.  

이 소설의 주 무대인 도모기 마을의 모델이 바로 소토메의 구로사키 마을이다. 2000년에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엔도 슈사쿠 기념 문학관’이 세워졌다.
 
 

나가사키 운젠지옥

고문과 박해의 장소 운젠지옥
순례팀이 셋째 날 방문한 운젠지옥은 지명 이름에 걸맞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역겨운 유황냄새가 코를 찔렀다.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열기 떄문에 조금만 걸어도 옷에 땀이 밴다. 지금은 관광지로 변해있지만 잔혹한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고문했던 박해의 장소다. 뜨거운 수증기만 봐도 그 고통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몸이 움찔거린다.

유황 냄새가 진동하고 화산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물과 수증기, 열기, 습기 등이 지옥 같다하여 운젠지옥으로 부르는 이곳은 16세기 후반 배교를 거부한 신자들이 박해를 받아 순교한 장소로 유명하다. 박해를 받던 신자들은 운젠의 뜨거운 유황샘에 던져지거나, 몸에 상처를 내고 강제로 증기와 끓는 물에 노출되는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신자들은 이곳에서 참혹한 순교를 맞이했다.

호코바루 처형장 기념비

537명이 순교한 호코바루
1657년, 오무라 지역에서 비밀리에 신앙을 유지하던 603명의 기독교 신자가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를 ‘고리쿠즈레’라고 부른다. 막부는 이들 중 406명에게 참수형을 선고했으며 1658년 131명의 신자가 호코바루에서 순교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앙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것으로 전해진다.

호코바루 처형장에서 처형된 131명 순교자들의 머리는 소금에 절여 20일간 오오무라의 주민들에게 본보기로 전시됐다. 순교자들의 몸체는 인적이 드문 대나무 숲속 두 곳에 구덩이를 파고 매장했다고 하는 데 이는 대나무 신이 기독교 신을 이길 것으로 여기고 일부러 키가 큰 대나무 숲에 매장했다고 한다. 그것도 안심할 수 없어 매장 후 3일 만에 몸체를 다시 파내 오오무라 바닷가에 버렸다고 전해진다. 머리 무덤과 몸체 무덤을 멀리 떨어뜨려 매장한 이유는 죽은 크리스천이 요술을 부려 다시 살아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순교정신으로 복음전할 것
나가사키 순례에 참여한 30여 명의 전도왕들은 상상조차 어려운 고문을 당하면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순교자들의 신앙이 인간의 연약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능한 일임을 배웠다.   

김선호 장로(제주 청수교회)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분들을 보고 배우며 내가 순교를 할 수는 없지만 천국 가는 날까지 순교의 정신으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했다. 

진철 집사(하늘평안교회)는 “개인적으로 일본을 싫어해서 참여를 망설였는데 26인 성인기념관 등을 보고 나서 일본과 한국이 신앙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박애자 권사(군위교회)는 “자신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고 모든 걸 다 내려놓은 순교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일에도 상처와 아픔을 느끼며 살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