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오개(1452호)유대인을 멸하려는 하만의 계략
▨… “유대인을 멸하려는 하만의 계략 앞에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였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오직 기도뿐임을… 하나님이시여,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기소서!” 서울신학대의 어느 과정에서 신학을 공부한 이분(애오개의 애독자이시다)은 어떤 정치단체의 활동에 적극 참여했지만, 작금의 우리 정치 현실에는 절망할 수 밖에 없음을 드러내셨다. <오직 기도뿐>이라는 성결교회적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밝히면서도.
▨… 문득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보다가 별처럼 빛나는 시뻘건 십자가들을 발견하고는 자신에게 그 십자가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물었던 미국인 신학도를 소개한 책이 있다. 미국인 친구를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교가 지니는 존엄을 상실한 한국교회, 시대와 사회를 향한 긴장과 비판을 잃어버린 한국교회를 고발하기 위한 작은 에피소드였지만 그 송곳의 예리함은 참혹할 정도였다.
▨… “어쩌면 서울 시내 곳곳에 박혀 있는 빨간 십자가들을 상공에서 내려다 보면서 묘지라고 생각했던 친구의 말이 한국교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이상철, 『죽은 신의 인문학』) 이 진단 앞에서 이땅의 목회자들은 도대체 어떤 표정들일까.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의 표정일까. 아니면 신음을 삼키며 죽음에 맞서기를 결의할까. “도시 곳곳의 십자가가 이제는 역으로 종교성의 상실을 증명하는 표식이 되어버렸다”는 비난을 아직은 피할 수 없다.
▨…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자유는 어떤 경우이더라도 싸구려 은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경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값싼 상품으로 퇴락시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현실이다.”(채수일, 『누구인가, 나는』) 자본주의에 매몰된 교회는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상품화한다. 기독교의 종교성 상실은 시뻘건 십자가에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매몰된 생명과 자유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 이땅의 목회자들에게 마틴 루터의 기도가 필요한 이유를 굳이 늘어놓아야할까. “주님에 대해 말하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 일을 잘 해내지 못하더라도 주님이 이 일을 잘 되게 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마틴 루터의 기도이지만 이땅의 성결교회 목회자들의 목회기도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