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톡톡(1451호)

단순 명료 간결하게 설교하라

2025-05-21     정재웅 교수(서울신대 설교학)
정재웅 교수

1971년 프레드 크래독은 현대설교학의 지평을 연 명저, 『권위없는 자처럼』에서 말의 힘을 상실해가는 것이 곧 설교의 위기라고 말한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언어의 위기는 나아지기는 켜녕 더 심화되었다. 기성세대는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하거나 전화를 통해 의사소통하고 싶어하지만, 젊은 세대는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메신저를 통해 문자와 이모티콘, 이미지와 영상을 필요에 따라 결합해 의사소통하는 것을 선호한다.

세대간 주된 의사소통 방식이 확연히 달라지다보니 세대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소통 장애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이는 세대간 신앙의 공유와 전수에 문제를 일으킬 수 밖에 없고 그 결과 한국교회는 밀레니얼-Z세대로 청년청소년 세대의 총인구 대비 신자 비율이 최소 3%에서 최대 7% 정도라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교회소멸이라는 경고가 머잖아 현실이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이는 한국교회가 겪는 위기의 한 원인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설교자로서는 자신의 의사소통방식에 관하여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필자가 지난 회차까지 소개한 다양한 설교형태들의 적용과 함께 설교에서 실행하는 구체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혁신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당연히 말하기 방식을 고쳐야 한다. 설교는 언어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계시 사건이다. 그래서 현대설교학자들은 설교를 말씀사건(Word-event)이라고 부른다.

설교 원고가 언어의 내용이라면 음성으로 전달되는 설교는 언어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설교학 교육은 설교 원고 작성법에 집중한 경향이 있다. 어떻게 하면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하여 논리적으로 그것을 전달할 것인지에 관심을 갖다보니 본문에 충실하고 논리적인 설교 원고 작성에 노력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이는 그동안 필자도 강조한 바와 같이 마땅히 훈련되어야 할 덕목이다. 본문에서 벗어난 설교, 요점도 분명하지 않고 논리도 오락가락해서 횡설수설하는 설교가 잘 들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의 내용 못지 않게 표현도 중요하다는 점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간혹 설교 원고 자체는 잘 작성되었지만 설교를 들을 때에는 무슨 얘기인지 알아듣기 힘든 설교를 보게 된다. 읽는 설교로서는 좋지만, 듣는 설교로서는 문제가 있는 설교이다.

촘촘한 주해에 바탕한 깊은 신학적 이해를 담은 설교문을 읽을 때에는 감동이 있으나, 막상 이를 들으려고 하면 집중이 잘 안될 때가 있다. 이러한 설교는 읽히는 설교이기는 하지만 들리는 설교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설교의 문제는 설교의 구술성(orality)을 간과하는 것이다. 설교는 글이 아니고 말이다. 글은 독자가 단번에 이해를 못해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은 한 번 듣고 이해하지 못하면 되돌아갈 수 없다. 기억력이 좋은 청중의 경우 이전에 들은 말을 되짚어 보며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설교자가 구술하고 있는 말은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는 읽히는 설교가 아닌 들리는 설교가 되어야 하며 설교의 언어는 구술성을 살리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      

들리는 설교를 위한 가장 중요한 원리는 단순 명료 간결하게 설교하라는 것이다. 구술 언어로서 설교는 각 문장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짧아야 한다. 주어와 술어가 반복되고, 접속사로 연결되어서 한 문장이 3-4줄이 되면 적절하지 않다. 그런 문장은 잘라내어 단순하고 간결하게 다듬어야 한다.

복잡한 설명, 난해한 전문용어, 현학적 표현, 불필요한 수식어는 과감하게 삭제해야 한다. 장식없는 백자처럼 단순명료하고 간결한 설교가 아름답다.